2. 사랑을 위한 이별은 2-2.
한 무더기의 편지가 편지함에 가득 쌓여 있었다. 서영이는 편지를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경비 아저씨가 서영이를 봤는지 창문을 빠끔히 열고 서영이를 불렀다.
“아 뭔 놈의 편지를 받지도 않을 곳에 보내 싸서 집배원 아저씨를 고로코롬 괴롭히남? 아까 집배원 아저씨가 투덜대면서 갔당께? 이자는 안 갖다 줄 팅게 알아서 하라고 하더구만.”
불만 섞인 경비아저씨의 목소리가 서영이의 귓전을 때렸다.
“…….”
“아 근디, 주소는 지대로 알고 썼는 겨?”
아무런 대꾸도 없자 경비아저씨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서영이에게 물었다.
“…….”
“으흠, 우라질! 비 한번 지삿날 과부 눈물처럼 처량하게 내린다.”
경비 아저씨가 괜한 하늘을 향해 혼잣말을 했다.
서영이는 여덟 통의 편지를 모두 꺼냈다. 경비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서영이의 귀속을 맴돌았다. 엘리베이터로 가려던 발걸음이 밖으로 옮겨졌다. 고개 숙인 가로등의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빗방울은 어느새 서영의 손에 쥐어 있는 편지들마저 적시고 있었다. 여덟 통, 지금까지 얼마나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전했다. 서영이는 편지를 보지도 않고 찢었다. 어차피 돌려받으려고 보낸 편지가 아니었다. 입 주위가 가늘게 떨렸다. 빗방울이 서영이의 눈에 내려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잠이 들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서영이니?”
수화기로 침묵조차 가라앉히는 음성이 들렸다.
“명수 오빠?”
“자고 있었니?”
서영이는 침대 옆 스탠드의 불을 켰다.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었다.
“아니, 그냥 누워 있었어. 웬일이야 오빠가 이 시간에 전화를 다하고?”
서영이는 직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서영아,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준호가 다쳤다.”
“뭐? 어디를? 거기 어디야?”
몽둥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몽롱해 졌다. 마음이 급해 졌다. 그러나 수화기의 음성은 여전히 침착했으며 낮게 깔려 있었다.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 별일 아니야. 조금 다쳤어. 준호가 네가 보고 싶다고 하는데 지금 올 수 있니?”
병원 입구에 서 있는 명수가 보였다. 긴 담배 연기가 빗줄기 사이를 헤집고 흐늘흐늘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서영이는 문득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저렇게 올라 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영이는 마음이 급해져서 택시를 멈췄다.
“오빠!”
택시에서 내리며 서영이는 다급히 명수를 불렀다. 명수는 서영이를 보고 길게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후 담배를 껐다.
“많이 다친 거야? 준호 오빠 전화도 안 받던데. 몇 호 병실이야? 어떡하다 그렇게 됐대?”
그녀는 명수를 붙들고 쉴 세 없이 질문들을 퍼부어 댔다.
“우선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명수는 비를 피해 서영이를 데리고 병원 휴게실로 갔다. 창가 히터 옆의 테이블 만이 졸린 잠을 청하는 사람들로 북적일 뿐 휴게실 안은 조용했다. 명수가 따뜻한 캔 음료를 사와 서영이에게 건넸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거야? 왜 바로 병실로 안 올라가?”
서영이는 명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급히 물었다. 명수는 조용히 캔 뚜껑을 땄다. 강한 타음 소리가 휴게실을 울렸다.
“서영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야 된다.”
조금 전 수화기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와 똑 같은 음성으로 명수는 말했다. 명수가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수천 년의 세월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명수의 얼굴만 살피고 있었다.
“놀래지마. 준호, …… 죽었다!”
“흐, 흑 …….”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다가온 충격이었기에 그저 멍할 뿐이었다. 말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일순간 벙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많이 다쳤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설마 죽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어, 어떻게? 거, 거, 거짓말……이지? 나 노, 놀래 …… 키려고 …….”
그녀는 처음 입을 여는 아이처럼 한입한입 입을 때며 말했다.
“사실이야, 받아들이렴. 어제 무리하게 서울로 올라오다 사고를 당했던 것 같다.”
명수는 담배연기처럼 긴 한 숨을 내뿜었다. 서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곧 갈 거야 올라가면 전화할게.”
“알았어. 빨리 와야 해! 안 그러면 나 잘지도 몰라.”
준호 오빠와의 마지막 통화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눈물이 빗방울과 함께 흘러 내렸다. 들썩거리는 어깨를 빗방울이 괜찮다는 듯 토닥토닥 다독거려 주었다. 언젠가 다시 태어난다면 한줄기 바람이나 빗방울이 되고 싶다고 했던 준호 오빠가 빗방울이 되어 지금 그녀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영이는 가만히 한 손을 어깨에 올렸다.
‘오빠, 떠나가도 괜찮지? 잊을게! 이제는 …….’
그녀는 뒤돌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작은방으로 향했다. 그동안 정리해 두었던 준호 오빠의 유품들이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듯 한쪽 귀퉁이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불쌍해 보이려고 애쓰지 마. 나도 힘들어! 정말 힘들 단 말이야, 오빨 잊는다는 거!’
서영이는 준호의 유품들을 껴 앉았다.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 내렸다.
아직 편지를 뜯어보지 못했어요. 마치 남의 물건을 훔친 것 같아 자꾸 망설여지네요. 옆집 아주머니에게 얘기를 들었어요. 전에 이곳에 한 남자가 살았다고 하네요. 물론 지금은 없지요.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주머니도 모른답니다. 아주머니는 그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껄끄러운 가 봐요. 청문회 나온 증인처럼 자꾸 말끝을 흐리면서 모른다는 말만 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더 편지가 궁금해 져요. 유혹의 손길이 자꾸 다가옵니다.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요? 요 며칠 이 편지 덕분에 여러 편의 소설들을 썼습니다. 물론 해답은 편지를 열어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상황이 즐겁습니다. 모처럼 저에게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니까요. 마치 탐정 처럼요. 그래서 편지를 안 뜯어보는 지도 모르겠어요. 편지는 그 후로 두 통이 더 오고 난 후 더 이상 오고 있지 않아요. 우체국 아저씨가 이제는 아시고 안 갖다 주시던지 아니면 제가 반송한 편지를 받아봤나 봐요. 서영이란 이 사람은 남자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줄 모르고 편지를 썼던 걸까요? 반송된 편지를 보낼 때 그녀에게 편지를 써서 함께 보냈어요. 준호란 사람은 이곳에 더 이상 안 살고, 지금은 정현이란 사람이 살고 있다고요.
사랑하는 사람이겠죠? 얼마나 만나고 싶어 할까요. 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오는 날은 더욱 더 그 사람이 그리 워요. 주책없게 눈물이 흘러내리네요. 아직도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나 봅니다. 가뭄에도 시들지 않는 건 눈물인 것 같아요. 엄마에게 보이기 싫어 창밖만 바라봅니다. 제가 울면 엄마도 눈물을 흘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려 하지 않지만 눈물이 계속 나오네요. 엄마도 제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아요. 엄마가 울면 저도 우니까요.
우리 엄마지만 엄마는 정말 불쌍해요. 엄마에게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일찍 돌아가신 아빠가 밉습니다. 혼자 남을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눈을 못 감을 것 같아요. 그래서 기도를 합니다. 살려 달라고, 엄마가 살아 있을 동안만 살려 달라고. 하지만 하나님도 그렇게는 못하나 봐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또 눈물을 흘립니다. 차는 벌써 도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접어들었네요. 곧 우리 집이 나타나겠죠. 이제는 눈물을 닦아야 되요. 엄마에게 들킬 테니까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기사 아저씨는 저를 훌쩍 안아서 휠체어에 앉힌 후 씽긋 웃고 떠납니다. 우체통 쪽으로 제일 먼저 눈이 갑니다. 엄마는 그런 나의 마음을 벌써 읽었나 봐요.
“편지가 없구나.”
엄마도 실망을 했나 봐요. 사람은 참 이상하죠? 한때는 쓸데없는 편지가 온다고 귀찮아하더니 정작 편지가 안 오니까 이렇게 허전해 하니 말입니다. 그래도 한 달 넘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지루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갑자기 피곤이 밀려오네요.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봅니다. 뼈만 남은 나무들이 벌벌 떨고 있네요. 왜 나무들은 겨울이 되면 옷을 벗어버릴 까요. 더운 여름에는 두꺼운 외투를 몇 겹씩 껴입으면서요. 고행의 한 방법일까요. 사랑도 그럴까요. 피하는 것이 아닌 부딪혀 이겨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것을 저 나무들이 저에게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2년 전 한 남자의 사랑을 피해 허겁지겁 도망치듯 엄마를 졸라 이곳으로 이사를 왔던 때가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 규석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어요. 서로 만나면 먼 산 보듯 하던 사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상대방이 누군가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자신들의 마음이 아파 오기 시작하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우습죠? 사람들의 관계요. 마치 99℃에서는 물이었다가 한 순간 100℃가 되면 수증기로 증발해 버리는 물처럼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다가 오늘은 연인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놀랍기도 했어요. 하지만 100℃가 되기 위한 과정이 있었듯이 규석이와 저 사이에도 그만큼의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거리가 좁혀진 거 같아요.
규석이가 군대에 간 후 얼마 있다가 혈액 암이란 걸 알았어요. 처음에는 항암치료 잘 받고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나을 듯 하다 다시 재발을 하고 병세는 점점 깊어만 갔지요. 휴가를 나오는 규석이를 만나는 것이 점점 힘들어 졌어요. 그렇다고 규석이에게 말할 수는 없었어요. 그가 힘들어 할 거 같아서, 아니 그 보다는 떠나 가 버릴 것 같아서 ……. 그래서 규석이의 제대 날짜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떠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먼저 버림받기 싫어서 말입니다. 베개가 축축합니다. 베개를 들었습니다. 세 통의 편지가 서로를 꼭 껴안고 세로로 누워 자고 있네요. 편지를 열어봐도 될 것 같아요. 이 편지들은 보내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었거든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요? 연애편지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떨립니다. 규석이가 보내왔었던 군사우편 때 처럼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