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을 위한 이별은2-1.
“여보세요?”
“형준 입니다. 잘 들어갔어요?”
기계적이지만 따뜻한 남자의 음성이 핸드폰 너머로 흘러나왔다.
“예, 방금 전에 들어왔어요.”
서영이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와 핸드백과 부케를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다.
“많이 피곤하시죠?”
걱정스런 형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저 보다는 형준씨가 더 피곤할 텐데요 뭐. 결혼식장에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요.”
서영이는 머릿결을 쓸어 올리면서 화장대 앞에 앉았다.
“일찍 자요. 내일 또 돌아다녀야 하니까요.”
“예, 형준씨도요.”
서영이는 대충 화장을 지우고 쓰러지듯 침대위에 누웠다. 물속으로 몸이 가라앉듯 푹 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단짝 친구였던 지원이가 결혼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겨 지지가 않았다. 서영이는 부케를 바라보았다.
“너 날 잡았다며?”
전화를 받자마자 지원이가 한 말이었다.
“응, 그렇게 됐어.”
서영이는 지원이에게 먼저 말한 다는 것이 미안해서 에둘러 말했다.
“기집에 그런 좋은 일 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암튼 잘 됐다. 너 내 결혼식에서 부케 받으면 되겠네.”
“아냐. 내가 어떻게 다른 애 받으라고 해.”
서영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야. 우리 중에 6개월 안에 결혼할 친구는 너 밖에 없어. 애들 혼삿길 막을 일 있니?”
“그거 다 미신이야. 정인이나 가희 보고 받으라고 해. 게네도 애인은 있잖아.”
“몰라, 물어 보긴 했는데 둘 다 싫대. 지들 날 안 받았다고. 암튼 너 밖에 없으니 그렇게 알고 있어. 순리대로라면 내가 니 부케를 받았어야 했는데 …….”
지원이는 실수라도 한 듯 말끝을 흐리고 다시 본론을 얘기 했다.
“야,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예쁘게 잘 입고 와. 알았지? 그때 보자.”
한 달 전 지원이는 일방적으로 그렇게 통보를 하고 전화를 끊었었다. 서영이는 결혼식장에서 지원의 모습이 생각났다. 원래부터 예쁜 친구였지만 오늘따라 정말 너무 예뻤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보였다.
‘기집에 결혼식 날 슬프다고 하던데 걔는 왜 이리 신났던 거야. 하나도 안 울고.’
신부 대기실에서도 지원이의 웃음과 수다는 끝이 없었다. 지원이는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의 친구였지만, 반대로 서영이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매사에 걱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별명을 사서걱정이라고 했다. 지원이는 서영이에게 결혼 준비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이것저것 말해 줬었다. 하지만, 서영이는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부케를 받는 자리에서도 어떻게 부케를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부케를 받으러 나갔을 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쏠리는 것도 너무 창피했었다.
‘내가 결혼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힘들지?’
결혼 준비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남들 다 하는 것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장부터 혼수용품까지 쉽게 진행되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집은 서영이가 지금 사는 곳으로 형준씨가 옮겨오기로 해서 집구하는 일은 덜 수 있었다.
“때르르릉, 때르르릉, 때르르릉”
서영이는 전화를 받으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천근만근의 피로가 서영의 몸을 프레스로 누르듯 사정없이 짓누르고 있었다. 팔을 뻗어 보았다. 닿을 듯 말 듯 수화기는 서영의 주위를 맴돌았다. 더듬더듬 손을 휘저어 보았지만 여전히 수화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서영의 몸이 다시 침대 속으로 움츠려 들었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귀에 거슬렸다. 서영이는 베개 옆의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니 아직도 집에 안 들어 간나?”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방금 집에 들어왔어요.”
서영이는 피곤에 절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시나, 그럼 퍼뜩 전화 안 받고 뭐 하노?”
“엄마, 나 지금 무지 피곤해. 무슨 일인데?”
서영이는 겨우 입을 열었다.
“가구는 산나?”
엄마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거 때문이야? 엄마 내가 내일 전화할게. 끊을게.”
서영이는 엄마의 말에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야, 이 가시나야, 그라고 니 집안에 준호 가 물건이나 흔적들 다 치원나?”
엄마는 서둘러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왜?”
서영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가 알면 우짤라고? 가구들 들어오기 전에 퍼뜩 치우 거라 알긋나?”
엄마는 금방이라도 누가 서영이의 방에 와서 조사를 할 것처럼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엄마 끊을게. 들어가요.”
서영이는 전화를 끊고 눈을 감았다.
‘준호 오빠.’
마음까지 깊은 심연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형준씨를 사랑하게 되면서 잊었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잊고 있을 수 있었을까?’
서영이는 자신이 미워졌다.
‘다 그런 걸까?’
서영이는 준호 오빠를 마지막으로 찾았던 때를 생각했다. 형준씨를 만나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찾아갔던 날, 서영이는 오빠의 재를 뿌렸던 강가 앞에서 하루 종일 서글피 울었다. 평생 오빠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다시 받아들이게 된 것에 대한 죄스러움과 미안함이었다.
“미안해 오빠야.”
그날 서영이는 준호에게 몇 번이고 용서를 빌었다. 자신이 형준씨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늘에서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준호도 잘 됐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하겠다고 자신에게 말을 했었다. 서영이는 그 미안함 때문에 가끔씩 찾아오마 하고 약속을 했었지만, 준호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서영이는 준호 곁을 떠나오면서 마음속으로 미안해란 말을 수 없이 했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눈가를 타고 귓가로 흘러들고 있었다. 코끝이 시렸다.
‘참 무심하지.’
그러고 나서 단 한 번도 그 강가에 서영이는 찾아가지 않았다. 준호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건 결국 자신이 내린 결론이었다. 부글부글 가슴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목젖까지 타고 올라왔다. 혼자 있었을 준호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
서영이는 천천히 지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안 주위를 고개를 돌려 살폈다. 없었다. 어느새 방안은 형준씨와 함께 했었던 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영이는 핸드폰의 사진들을 하나씩 살폈다. 세상의 행복을 모두 가진 사람처럼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난날의 아픈 흔적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형준씨가 있었다. 언제부터 이 사람 때문에 이토록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는지 서영이 자신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준호를 잊고 있었다. 긴 한숨이 바람소리처럼 흘러 나왔다.
서영이는 작은 방으로 갔다. 어려서부터 미련이 많은 사람이 되어서인지 버리지는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 놓은 물건들이 이제는 온 방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물건들 위로 수북이 쌓인 먼지들이 그 동안 무심했던 서영이를 꾸짖었다. 준호 오빠의 물건들을 이방으로 옮겨 놓은 이후로 서영이는 이방을 찾지 않았었다. 서영이는 앨범을 폈다. 형준씨에 밀려 쫓겨 오듯 피신한 이곳에서도 준호 오빠의 사진은 앨범 사진첩 한 부분을 차지하지도 못하고 한 칸에 널브러져 있었다. 서영이는 바닥에 깔려 있는 물건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쪼그려 앉았다. 웃고 있는 준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옆에 아까 핸드폰 사진 속에서 봤던 얼굴과 똑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때도 그랬었는데 …….’
서영이의 입가에 웃음이 배어 나오는 듯 싶더니 어느새 가슴 한구석으로부터 그리움의 파도가 밀려 올라와 눈가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서영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서영이는 준호의 사진들을 모두 끄집어냈다. 서영이는 방안을 둘러보다 책장 위에 놓인 라면상자에 시선을 멈췄다. 서영이는 바닥에 쌓인 물건들을 밟고 까치발을 해서 상자를 내렸다. 상자 위에 쌓인 먼지를 아이 머리 쓰다듬듯 곱게 쓸어내렸다. 상자를 열자 지난날 준호에게서 온 빛바랜 편지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서영이는 편지 하나를 들어 읽어 나갔다.
겨울이 차츰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내가 직접 느낄 수 없지만, 거리를 다니는 여자들의 옷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죠. 전 외출을 할 때면 미라처럼 눈만 빼 놓고 온 몸을 감쌉니다. 그래서 집에서 나가기가 정말 싫어요. 하지만 겨울이 오면 좋아요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이렇게 온 몸을 칭칭 감듯이 하고 다니니까요. 전 한 달에 한번은 꼭 나가야 해요. 물론 그보다 자주 나갈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하얀 백차를 타고 가니까 창피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오늘 같이 맑은 날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이렇게 좋은 날 유리 상자에 갇힌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거리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 슬프거든요. 엄마는 조금 더 제가 건강해 지면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전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전 1년 전 보다도, 한 달 전 보다도, 그리고 어제보다도 야위어 가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걷기조차 힘들어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는데도 엄마는 조금만 지나면 예전처럼 걷고 뛰어다닐 수 있다고 해요.
전 엄마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물론 그 말이 거짓인 줄 알죠.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의 맘을 알고 있으니까요. 저도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마음속은 이미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어요. 골수가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전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죠. 세상과 이별을 준비한 이후부터 마음이 편안해 졌으니까요.
참,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어요. 2년을 넘게 살면서 고지서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한 달 전부터 이상한 편지가 2~3일 간격으로 오고 있거든요. 아마도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보낸 사람 유서영, 받는 사람 정준호, 그런데 제 이름은 정현, 강정현이거든요.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고생을 하세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편지를 이렇게 편지함에 넣고 가시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엄마를 졸라 우편배달부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덕분에 가을의 끝자락을 느낄 수 있게 되었구요. 엄마는 제 곁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은지 안절부절 입니다.
햇살의 포옹이 참 좋습니다. 눈가로 스치는 바람도 참 시원하구요. 바람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그만 틈만 있으면 어디든지 가니까요. 햇살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벌써 바람은 내 발가락을 간질간질 괴롭힙니다. 엄마는 까치발을 하고 기웃거리며 골목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숨바꼭질 하는 술래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찾는 사람은 꼭꼭 숨었나 봅니다. 저는 주문을 외웁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나, 둘, 셋, 넷…, 일곱, 여덟, 오늘까지 오면 아홉 통이 됩니다. 편지봉투가 저마다 개성을 띠고 있어요. 각각의 사연이 다르다는 것을 표시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벙어리장갑을 벗고 편지를 하나 잡았어요. 서영, 이름이 참 곱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기를 낳는다면 그렇게 부르고 싶네요. 갑자기 웃음이 나왔어요. 무심코 배로 손이 갔거든요. 지금 제 배속에는 아이 대신에 수많은 괴물들이 살고 있죠. 에일리언처럼 어쩌면 조만간 이 배를 가르고 튀어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서글퍼집니다. 왜 눈에는 이슬이 맺힐까요? 가슴에서는 샘물이 벌컥 벌컥 솟아 나올까요?
엄마가 소리를 지릅니다. 드디어 숨은 사람을 찾았나 봅니다. 편지 하나가 미끄러지듯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집배원 아저씨는 들킨 것이 창피하지도 않은 듯 요란한 오토바이의 굉음 소리와 함께 무섭게 달려와 내 앞에 멈춰 섭니다. 이제야 멋 적은 가 봅니다. 멈칫 멈칫 제 모습을 살피는 것을 보니까요.
“편지가 자주 오네요?”
집배원 아저씨가 상냥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혀 나에게 편지를 전해 주네요. 난 눈웃음을 짓습니다. 아저씨는 그것밖에 볼 수 없으니까요. 역시 편지는 같은 사람이 보낸 겁니다. 난 아저씨께 내가 가지고 있던 편지까지 함께 건넸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