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녹록지 않구나
Marrakech, Morocco
일곱, 여덟 번째 날 ▷ Marrakech, Morocco
우리도 여전히 호구다
돌아온 마라케시는 그렇게 편안하고 엘 프낙 광장은 왜 이렇게 친숙한 거지 싶다. 이럴 때 사건은 터지기 마련이다. 기념품을 사러 돌아다니던 중 어떤 한 모로코 사람이 말을 걸었다. 우린 경계심이 있긴 했지만 한결 느슨해진 상태다. 정보를 주며 친근히 다가온다. 모로코는 천연 가죽 염색으로도 유명하다. 마라케시보다는 페즈라는 곳이 더 유명하다. 일정에 넣지는 않았지만 책에서 보고 흥미 있게 생각했던 곳이다. 가까이에 이 염색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며 길을 알려준다. 약간 의심이 되긴 했지만 왜 때문인지 따라가게 되었다. 뭔가 우리끼리는 돌아서 나오기 어려울 것 같은 미로 길을 계속 계속해서 들어갔다. 이미 돌이 킬 수 없는 길을 들어와 버린 기분이다. 의심과 경계가 시작되고 나는 다시 쫄탱이 모드. 얼굴이 잔뜩 굳었다. 다행히 친구는 나보다 담담해 보인다.
어느 염색하는 곳에 데리고 들어가긴 했다. 다른 어떤 남자에게 우리를 넘긴다. 아 이 고약한 냄새와 알아들을 수 없는 악센트에 영어. 천연 가죽 염색은 비둘기의 똥을 모아서 이용하기 때문에 냄새가 아주 역하다. 이 와중 설명을 듣긴 들었다. 5분 정도 있었나? 우린 더 이상 그 자리를 참을 수 없었다. 그냥 나가겠다고 하니. 돈을 내놓으란다. 하.... 그렇지.. 책에서 많이 본 내용이 이제야 떠오른다. 얼마 주면 되냐고 하니 50유로 내놓으란다. 그 순간에는 그냥 달라는 대로 빨리 주고 이 장소를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50유로를 삥 뜯기고 풀려 나는가 했다. 이번엔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왔던 그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팁을 달라고 한다. 우린 기분 나쁨을 팍팍 표시하며 50유로 줬으니 나눠가지든지 맘대로 하라고 열폭했다. 다시 광장을 찾으러 발길을 돌렸다. 기분이 많이 상한 우리를 파악하고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는 듯하더니. 금세 다시 두 명이 같이 와서는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같이 가 주겠단다. 하.... 꺼져........
애증 애증 해
1시간 정도 만에 일어난 이 모든 일. 하.... 정신 차리자. 마라케시는 끝까지 우리에게 녹록지 못했다. 광장으로 다시 나오니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 그새 점점 해가 뉘였 뉘였 저 간다. 노을과 광장 뷰를 잘 볼 수 있을 만한 루프탑 바를 찾아 올라갔다. 맥주를 한 모금하면서 방금 당한 일을 웃어 넘기기로 한다. 그래 마라케시에 돌아왔구나. 마라케시의 마지막 밤.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우리에게 멋진 노을을 선물해 준 모로코. 조금 전 해프닝은 털어 버리고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다시 감사한 마음만 가득했던 순간이다. 무엇보다 무사해서 감사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두고두고 이야기할 우리의 안주거리가 되어 줄 거다.
친구 생파
제마 엘 프낙 광장은 여전히 밤이 되니 더 활발하다. 마라케시에 있는 동안엔 늘 8시 전에 숙소에 들어갔었다. 11월이라 해가 빨리 져서 밤에 다니기가 좀 무서웠었다. 우리는 마지막 밤 숙소로 일찍 가고 싶지가 않다. 친구의 생일이기도 하니 괜찮은 루프탑 자리를 가진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밥을 먹고 디저트를 시키면서 초도 혹시 가능한지 부탁드렸다. 기꺼이 준비해 주신 직원분 덕분에 마라케시에서 생일 촛불 미션을 성공할 수 있었다. 주변 손님분들도 같이 축하 노래를 해 주셔서 행복한 생일을 마무리했다. 친구 생일 축하 영상을 찍는다고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녹화 버튼을 안 누르고 들고 있었다. 나란 여자 하.... 그래서 영상도 사진도 없지만.. 미안. 진심을 담아 생일 축하한다 친구야.
엽서 쓰기
12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돌아왔다. 드디어 마라케시의 밤을 즐기고 왔다는 이 뿌듯함. 낮에 쇼핑을 하면서 엽서를 한 장 샀었다. 사실 친구의 생일 카드 겸 우리 여행의 감사함을 글을 써 전하고 싶었다. 친구에게는 남자 친구랑 통화를 좀 하고 오겠다며 착한 거짓말을 하고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 룸에서 멀찍이 떨어진 리야드 모퉁이 테이블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조명이 어두워 핸드폰 조명에 의지한 채 조용히 글을 적어나갔다. 그리고 몰래 친구가 가지고 온 책에 꽂아 두고 잤다. 므흣.
아디오스 애증의 마라케시
벌써 여행이 끝이 났다. 공항을 가야 하는 날이다. 나는 바르셀로나로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비행기 시간이 조금 달라서 내가 먼저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택시 흥정에는 이제 도가 튼 우리는 적당한 가격에 오케이를 하고 공항으로 갔다. 택시 기사님이 친절하셔서 몇 시간 후 공항으로 이동해야 할 친구를 위해 기사님께 시간 예약을 했다. 그래서 같은 기사님의 배웅으로 우린 무사히 공항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택시 안에서 마지막 마라케시 영상을 담아본다. 아쉽다. 애증의 마라케시. 첫날의 힘들고 어렵고 기 빨리는 마라케시 아니었던가. 마지막까지 쉽지 않았던 이곳이 아닌가. 나의 모로코 여행 전체를 걱정하게 만들었던 그 첫인상은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왜 때문인지 눈물 나도록 아쉬움을 남겼다. 언젠가 다시 또 올게.
너랑 함께 해서 좋았어
잠시 후 엽서를 발견한 친구가 눈물 썩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우리 여행 내내 함께한 이 플라스틱 숟가락 사진도 함께. 이걸로 라면 국물도 먹고 주먹밥도 퍼먹고 많은 것을 했다. 없었으면 큰일 날뻔한 중요한 병정이었다. 꽤 많은 여행을 같이 했었던 우리. 그 경험들이 힘들 수도 있었을 모로코 여행을 결국 무탈하게 해 준 것 같다. 힘든 여정에선 힘이 되어 주었고 웃고 울고 쫄고 화내고 많은 감정을 공유했다. 많은 것을 얻고 경험했던 이번 모로코 여행. 가장 큰 얻음은 또 하나의 추억을 공유한 것이다. 고마워. 다음 여행을 기약했지만 멈추어진 우리의 여행. 곧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