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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Dec 06. 2020

대학병원 뇌신경센터에 선 30대

어느 날 후두신경통



운명이 나를 배신했다고 느꼈던 것을,

저도 겪었어요.

근데 지나고보니까 계절이 바뀐 거더라고요.

잠시 겨울잠을 잤다고 생각해요.


JTBC 싱어게인,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심사위원의 말




병원 정문에서 잠시 멈췄다.
9월, 떠나고 싶은 공기가 코끝에 찾아왔다. 
아, 벌써 가을이구나.




대학병원을 진료받으러 간 건 처음이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캐릭터들을 만나러 가는 건가 싶기도 했다. 몸이 아픈데, 나란 사람은 이 가운데에서도 낭만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 정말 많았다. 서울 촌놈이란 말처럼, 병원 촌놈이 되어버린 듯했다. 어리바리한 걸음은 어느 새 수납 창구였다.


"뭐요?"


내 차례를 알리는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진료의뢰서를 제출하려고 보니 앞 순서인 듯한 할아버지가 뭔가를 묻고 있었다. 어떤 용지에 사인만 하면 마무리가 되는 듯한데, 서류는 받고 뭘 해야하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할아버지, 여기에 이름 쓰시면 된대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나의 접수도 끝내고,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문득 월요일 아침 9시의 대학병원 풍경 속 나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플 나이가 아닌데 뭐하러 왔느냐고 누가 물어볼 것 같았다. 순간 벗어나고 싶었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생각해도, 뇌신경센터란 이름은 참 무섭다. 물론 나만의 선입견이겠지만, 무척 위중해보인다. 나는 그곳에서 뇌 MRI를 찍었다. 조영제를 넣지 않은 채 찍는 MRI 검사는 별 거 아니었다. 원통 속에 들어가 침도 삼키지 않은 채 20분 정도 있으면 됐다. 다만, 단 하나의 움직임도 허락하면 안 된다는 게 부담될 뿐이었다. 검사 중에 머리가 찌릿거리면 난 그 안에서 울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사실 대학병원 첫 진료부터 MRI 검사는 받을 순 없는 게 보통이다. 진료만 받고 예약을 잡고 다시 방문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난 진료를 기다리던 중에 머리가 찌릿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강도가 더 심했다. 찌릿 지이잉 찌릿 찌릿. 어르신들이 많은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필 그때 내 순서가 되었다. 



"아이고, 울면 증상을 이야기 못하니까 마음을 잘 붙잡아요. 어떻게 아파요."



전화 연결원이 적당히 정해준 의사는 나이가 지긋해보였다. 그는 조금은 단호하게 나를 타일렀다. 많은 대기자가 있는 만큼 민폐를 끼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게 아니었는데. 눈물을 머금고 그간 있었던 동네 병원에서의 진료와 통증을 설명했다. 



"의뢰서를 보낸 신경과 닥터분이 잘 보신 듯하네요. 이런 경우 웬만하면 뇌에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의심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MRI 검사를 해보죠."






밖으로 나오니 의사는 MRI 검사자 상황이 어떤지 간호사에게 살펴달라고 전달한 듯했다. 당연히 대기자가 많으면 불가능한 것인데, 운이 좋았다. 꽤 오래 기다리긴 했지만, 그날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결과를 듣기 위해 긴 기다림이 있었다. 조금 지루해질 때쯤 찌릿. 오늘은 아예 날을 잡았나보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은 나를 무참히 무력하게 만들었다. 



"역시 뇌에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이제 그럼 환자만 괴로워집니다. 

검사상 이상은 없는데 환자는 아픈 거죠."



그가 내린 결론은 원발찌름두통이었다. 참을 수 없는 극심한 두통이 발생하지만, 뇌에는 특별한 소견을 알 수 없다는 것. 그는 뉴론틴(Neurontin Cap. 100mg)을 처방했다. 동네 의원에서 준 약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 약들의 공통점은 졸음이 오고 무기력해진다는 점인데, 큰 차도가 없었던 걸 생각하면 달갑진 않았다. 많은 배려가 있었고, 뇌에 이상이 없다는 기쁨이 있었지만 결론은 막막했다.



남편과 나는 각종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국내 의사들이 나와 설명하는 방송부터,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까지. 생각보다 많은 의사들은 유튜브에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후기를 더한 경우도 보았다. 그중 몇 가지를 추려 다음 날 병원에 전화를 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어느 유명한 의사는 연말, 그러니까 3달은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계절이 한 번 더 바뀌어야 가능하다니.



하루 이틀 알아보면 볼수록 아직 내 통증의 원인은 따로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두통에도 너무나 많은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 그 까닭은 분명히 존재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머리가 찌릿할 때 상황들이 조금씩 간추려지기도 했다. 무방비로 당할 때와는 다르게, 아프지 않기 위한 나만의 요령도 생겼다.



유독 고개를 숙일 때 빠르게 찾아왔고, 목이 뻣뻣해지며, 뒷통수가 당기는 기분이 잦아졌다. 두피가 전체적으로 민감해지고 솟아있는 느낌도 들었다. 찌릿거리지 않을 땐 그 부분을 만지면 따갑기도 했다. 누울 땐 정수리 부근이 머리 무게에 눌린 기분이 들어 잠을 설쳤다. 동네 의사의 말처럼 이게 목에서 기인한 거라면. 문득 아픔을 일으키는 유발점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닐까. 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검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번 고민은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중 어디냐의 갈림길이었다. 중소병원의 통증의학과도 후보군에 올랐다. 스포츠 경기 종목처럼 의료 분야도 너무 다양했다. 나름 이름난 듯한 의사는 겨울이 되어야 볼 수 있으니, 나는 견디기 어려웠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방문했던 대학병원의 신경외과로 일단 가봤다. 



"환자분, 통증만 생각하세요. 많은 걸 고민하면 결정 못 내립니다."



진료를 받고 검사 예약을 하고. 경추 MRI를 진행했다.직접 집도를 하는 외과의는 참으로 이성적이었다. 약으로도 호전이 없으니 주사치료를 권했다. 목에 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는지라 부작용은 어떤지 안전한지 물어보았다. 3분 남짓한 진료 시간 안에 목 어딘가에 주사 맞을 걸 결정하는 건 적어도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경추 5번 6번 사이가 다소 좁아진 것 같은데, 그 외엔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다. 한 번 좁아진 건 다시 복구되진 않는다고 했다. 재활의학과 진료 예약을 걸어놓고 하루종일 생각해보니, 오전에 만난 의사의 그 말이 맞았다. 아픈데 뭘 망설였나 싶었다. 일단 어디든 뭔가 해보자. 벌써 증상이 시작된 지 2달이 되어가니까.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목도 좋지 않다고 하고, 두통도 있으니 뭔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러다 찌릿거리는 통증은 또 나를 무너뜨렸다.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일상 자체도 쉽지 않았다. 가족을 만나야 하는 일정이 생기면 예민해지기 일쑤였다. 뭔가가 뚜렷하게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의 걱정만 더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없는 시간 홀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의 심정을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드디어 목에 주사를 맞아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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