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오늘이 되고보니, 비틀즈의 예스터데이가 이토록 사무칠 줄. 나는 몰랐다. 고통이 없었던 그 어제가 너무 그리웠다.
7월 초, 덥고 습한 여름
무심코 모니터 앞에서 핸드폰을 보았다. 번쩍.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정확할까. 머리 정수리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앞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그 부위로 바로 손을 가져다댔다. 단 한 번의 찌릿. 대수롭지 않았다. 잠시 소파로 돌아가 10분 정도 있었을까. 다시 컴퓨터를 돌아와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다음날도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았다. 내려둔 종이를 향해 시선을 옮기는데, 찌릿. 찌릿. 찌릿. 총 3번이었다. 5초 정도 걸렸을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위는 그 전과 다르지 않았다. 뇌에 문제가 생겼나. 내가 느낀 부위가 뇌의 어느 부분인지 찾기 위해 두뇌 사진을 검색했다. 두정엽에서 다소 전두엽으로 향해있는 듯한 위치. 30대인 내게 설마, 큰 일은 아니겠지.
뇌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검색했다. 생소했지만 집앞에 신경과 병원이 있었다. 작은 의원이었고, 원장 한 분이 있었다. 다소 마르고 차분해보이는 그분은 내가 하는 표현들을 빠짐없이 적는 듯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손소독제를 빠르게 바른 그는, 내가 말했던 머리의 위치를 손으로 가리키며 안경 너머로 신중하게 체크했다. 그리곤 X-ray로 목과 어깨 사진을 찍자고 했다.
"목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요."
일자목이면서도 오른쪽으로 기운 상태. 처음 알았다. 위치상으로는 경추성 두통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5초 안으로 진행되었으니 1차성 두통으로 보고 약 처방과 함께 물리치료를 받았다.
"이건 캡슐 색깔에 따라 약의 강도를 알 수 있어요. 일단 증상이 심한 편은 아니니, 노란색 캡슐을 처방할게요."
의사는 리레카 캡슐이란 걸 설명했다. 보통 약의 이름까지 디테일하게 들은 적 없는데. 병원을 자주 간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증상을 들으면 그걸 완화해주는 약이라고 대략적으로 말하곤 했다. 조금은 믿음이 갔다. 동네에 괜찮은 의원 하나가 있다고 생각했다. 병이 나음을 떠나서 마음 만큼은 나은 것 같았다.
**리레카 캡슐(Lyrica Cap.)은 말초와 중추 신경병증 치료에 사용된다고 인터넷 서칭을 통해 알 수 있다.
3일치 약을 먹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찌릿한 증상이 한두 번 3초 정도 있었나. 목(경추)의 상황도 좋지 않으니 약도 탈 겸 물리치료를 몇 번 더 받으러 갔다. 두통에 큰 진전은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다 문득 배꼽 주변으로 콕콕 쑤시는 느낌을 여쭤봤다. 뜬금 없지만 이번에도 잘 들어줄 것 같았다. 나의 말을 열심히 작성하던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잠시 누워볼까요?"
청진기로도, 손으로도 배꼽 주변을 촉진하던 의사는 충수염을 의심했다. 아니 내가 맹장일 수 있다고. 소화도 잘 되고 화장실도 문제 없다고 했지만 검사는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일반적으로 피검사로 염증 수치를 본 후 초음파로 보고 CT로 판단하는 게 순서이니, 간단하게라도 관련 병원을 방문해볼 것을 제안했다. 간단한 수술 같지만, 진단하긴 까다롭기도 하다며.
그렇게 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맹장수술을 했다.
링겔도 한 번 맞아본 적 없는 나는, 혈관으로 다양한 약들을 내 몸에 주입하는 경험을 했다. 무통주사는 무참히 날 어지럽혔고, 항생제는 혈관을 쓰리게 만들었다. 배꼽을 열어 맹장을 잘라내는 일은, 한 달 정도의 회복기를 요구했다. 다행스러운 건 나름 큰 일을 치르며, 찌릿한 두통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의 기도는 이렇게 나를 보호하나보다.
이제부턴 장에 좋은 음식을 먹으리라. 그날도 집에서 섬유질 식사를 한다며 야채를 씻고 있었다. 찌릿. 아니겠지. 저 멀리 놔두었던 기억이 5G급으로 나를 스쳤다. 그날따라 왜 그랬을까. 아침을 소파에서 먹겠다며, 한 손으로 음식이 담긴 그릇을 들고 고개를 이리저리 숙였던 것 같다. 파파파박. 찌릿 지이이잉. 찌릿 지잉. 바로 그 자리였다. 머리카락을 비집고 손가락으로 두피를 어루만졌다. 정수리에서 조금 앞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어떻게 이를 닦고 세수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길로 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30분 가까이 계속되는 찌릿 증상에 목덜미는 땀으로 가득찼다. 집앞에 있는 병원이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9시 30분에 문을 여는 병원에 첫 환자로 들어가 의사를 보자마자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너무 아파요. 머리가 너무 아파요."
거의 살려달라는 절규였다. 휴지를 건네던 의사는 두피에 주사를 놓았다. 머리에 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약물은 리도카인(lidocaine)이라고 했다. 증상이 나타난, 머리 앞 부분을 중심으로 두정엽에서 후두엽까지. 주삿바늘이 머리 위에서 뒷덜미(후두)로 내려가는 라인을 중심으로 조금씩 자리를 옯겨가며 두피를 찔렀다. 주사를 맞는 동안 눈믈은 그쳤고, 간호사가 주사 놓은 곳들을 지혈했다. 잠시 기다리며 의사에게 맹장수술 소식을 전했다. 터지기 전에 잘 마쳤다고.
**리도카인은 국소 마취와 부정맥 조절 효과를 보이는 약물로, 신경막 안정화 및 통증을 느끼는 신경 경로를 차단한다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인 패턴의 통증이 아니었는데 그랬군요. 저도 언젠가 할지도 모르는 게 맹장수술인 거죠. 미리 했다고 생각해요. 물리치료 끝나고 컨디션 한 번 더 봐줄 테니 보고가요."
다행히 물리치료를 받고 난 후 머리는 진정이 됐다. 리도카인이란 마취 성분이 들어가서인지, 따끔거리다 말았다. 뭔가 약이 내 신경을 억제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방전을 받으며 정신을 차리고보니, 엉엉 울던 내가 생각났다. 역시 결제할 때는 이성을 차리게 되는 듯하다. 리레카 캡슐은 어느 새 노란색 25mg에서 파란색 50mg으로, 빨간색 75mg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간호사는 진료 한 번 더 볼 거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그냥 갈게요."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새벽에 잠시 자다 깼다. 찌릿. 끈질기구나. 이젠 낮과 밤도 가리지 않네. 예전부터 사용했던 베개가 점점 불편해지더니, 눕는 것마저도 쉽지 않아지는 건 아닐까. 아무렇지 않다가도 나타나는 이 질병은 정말 뭐란 말인가. 괜찮을 땐 문제 없던 내가 자다가 이러니, 남편도 슬슬 걱정이 깊어진 표정이었다. 동이 트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뇌에 이상이 없을 거라고 전 생각해요. 하지만 자다가 아팠다고 하니, 검사를 한 번 받아보죠."
진료의뢰서를 받아들고 대학병원 신경과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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