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후두신경통
"파솔라 구간을 참 좋아했는데 잘 안 되네요."
"과감하게 하세요. 이상하게 하면 내가 얘기 할게요."
MBC 놀면뭐하니 환불원정대 프로젝트 중 가수 엄정화와 보컬코치 노영주의 대화
갑상샘암 수술 후 성대의 한쪽 신경이 마비되어 잘 닫히지 않는 가수 엄정화의 고군분투를 보았다.
신박기획 지미유가 그녀에게 사비를 들여 10회분 레슨비를 선물했던 일.
보컬코치 노영주는 첫 만남부터 그녀의 눈물을 만나야 했다.
아픈 사람의 마음 고생이란,
오히려 가장 원하고 바랐던 순간에
그 농도가 절정에 달한다는 걸 알았다.
남편은 기꺼이 휴가를 냈다. 큰 수술도 아니고 시술도 아니었지만, 처음 겪는 일 앞에선 용기가 필요했다. 아니, 응석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치료가 끝나고 남편과 즐겁게 외식하고 싶었다. 고개를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가 찌릿거리니 집에서 대부분 누워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일상이 무너졌달까. 어서 목에 주사를 놓는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무섭고 겁이 나는 것보다 어서 이 통증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증상을 보니, 경추 5번 6번보다는 후두신경차단 주사를 맞도록 하죠."
재활의학과 의사는 간단히 정리했다. 병원을 헤맨 지도 두 달. 그 중의 한 달은 같은 병원에서 3곳의 진료과를 거쳤다. 뇌와 경추 MRI까지 찍었지만 후두신경이란 단어를 발견하지 못했다. 정말 그게 맞다면 좋겠다고 바라고 바랐다. 진료했던 의사의 오더를 받은 어느 젊은 여성 의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엎드려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초음파로 경추 윗부분 우측을 관찰하는 듯했다. 흔히 말하는 머리 제비추리 오른쪽 부위 같았다.
"주님, 그 손길로 통증을 낫게 해주세요."
타깃을 잡았는지 소독솜이 피부를 훑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목에 온전히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엉덩이 주사도 힘을 주면 안 되니까. 맹장수술할 때도 썼던 방법인데, 종교가 있든 없든 이제 내 몸은 신의 것이라 마음 먹으면 좀 편안해진다. 덱사메타손(Dexamethasone)이라는 스테로이드 성분이 든 주사액은 머리와 목 경계에서 이곳저곳으로 흘러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피부 겉으로 약물이 흘러 넘친 줄 착각할 정도로. 신기했다.
어지러울 수 있으니 10분 정도 의자에 앉아있다가 나왔다. 오전 진료인데 얼마나 긴장했는지 아침밥도 먹지 못했다. 처방해준 약을 빨리 먹기 위해 예정대로 외식을 했다. 기껏해야 갓 튀겨진 돈가스 정식이었지만, 몸에 큰 이상 없이 주사를 잘 맞았다는 생각에 한 입 베어물 때마다 배실배실거렸다. 모든 치료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이니까.
2주 후 예정된 진료가 다가오는 동안 매일 시도때도없이 찌릿거리던 머리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면 바로 증상은 나타났고, 뒷통수 두피는 달아오른 것 같이 예민했다. 다시 만난 재활의학과 의사는 별 말 없이 같은 부위로 한 번 더 주사를 처방했다. 이번엔 어느 젊은 남성 의사가 같은 방식으로 주사를 놓았다. 경험했음에도 주삿바늘이 피부를 뚫는 느낌과 약물이 주입되는 느낌은 별로였다. 여부가 있나.
"이 증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걸까요?"
"그걸 원한다면 고주파 치료가 있어요."
다시 2주가 지나는 동안 머리가 찌릿거리는 후두신경통은 총 서너 번 정도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진전이었다. 그렇지만 아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남은 숙제였다. 평생 가지고 살 순 없는 통증이지 않은가. 고주파 치료. 이름 참 무섭다. 바늘에 고주파가 들어간다는 건데,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해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난 그리 똑똑한 지식인이 아닌데. 어떤 부분에 문제이니 어떤 시술이 들어갈 거라는 정도는 이야기해주면 좋았을 텐데.
남편과 다시 유튜브와 인터넷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머리와 목이 좋지 못하니 이것저것 알아보는 일은 수월하지 않았다. 홍보인지 정보인지 모를 콘텐츠를 보면 볼수록 결정은 더 어려웠다. 내 몸인데 뭘 알아야지. 개인적인 견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내가 받을 치료법일진 모르겠지만, 고주파란 단어에 댓글평이 좋지 못했다. 아픈 걸 견디는 일도 쉽지 않은데 이 병에 대해 똑똑해져야 했다. 결정은 환자몫이니 도리가 없었다.
일단 동네의 관련 의원들을 다녀보자. 머리가 찌릿거리는 증상은 대중교통 타는 일도 버거웠다. 어찌됐든 후두신경통의 치료는 목에서부터 기인한 듯하니, 정형외과를 가보기로 했다. 그간 치료받은 내역과 검사받은 영상을 제출하고, 진료를 받았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는 전신 X-Ray를 찍게했다. 목에서부터 엉덩이까지를 관찰하며 나의 몸이 어디어디가 틀어지고 문제가 있는지 짚었다. 역시 경추는 꽤 기울어져 있었다.
"두통은 좁아진 경추 5번과 6번보다는 윗부분 때문일 가능성이 커요.
일단 이전 병원에서 주사치료를 최근에 받았으니,
그쪽을 바로잡으면서 두통의 경과를 보도록 합시다."
이제 알았다. 그래서 대학병원 의사가 후두신경 주사를 처방했구나. 좁아진 경추 부분으로는 팔이 저리는 게 일반적인데 그런 건 없다고 하니 나온 소견이었다. 사람들이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는 이유가 이런 걸까. 중병도 아닌 것 같은데, 집을 알아보듯 발품 팔아야 조금씩 정보를 들을 수 있다니. 아무리 많은 정보가 인터넷에 올려졌다고 해도, 모두 추측에 불과했다. 내 스스로 전문가가 아니니까 나에게 알맞게 커스터마이징할 수가 없었다.
물리치료사는 헌신적으로 두통을 일으키는 지점들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목도 바로잡으려 하는 듯했다. 평소 집에서 할 수 있도록 뒷통수가 당겨지는 증상들을 완화하는 방법들도 알려줬다. 목의 긴장도가 참 높은 환자라고 말했다. 체외충격파는 유독 아픈 부분들을 찾아냈다. 받고나면 뻐근한데 하루 이틀 지나면 일시적으로 풀리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머리가 찌릿거리는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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