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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 Nov 13. 2019

이명 耳 鳴 - 그대를 보냈다. 아니다. 담았다

귀에 고이는 울림 - 9

그대를 보냈다. 

아니다. 담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당신이 그 눈, 속 안의 기억에 나를 담은 것처럼. 내 그늘 아래 그대를 묻었다. 물을 주지 않았다. 오랜 시간 물을 주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가끔 파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묻고 물을 주지 않았다. 그대는 종종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런 순간 당신의 검은 홍채 안에는 오히려 나를 기억하려 애쓰는 두 눈이 떨렸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방금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대는 아직 나의 손을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두려워한다. 

내가 느낄 수 없던 순간들에 대한 공백이 두려워진다. 그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때, 순간 어딘가로 떠나 있었는지. 나와 다른 출구를 찾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 속에 기억의 햐얀 그림자와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당신의 머리 위를 하얗게 태우고 재만 남겼다. 나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멀리 떠나가기 전 당신과 나와의 공백은 내가 메워가기에 너무나 먼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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