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한살 한살 먹을수록 영양제도 한알 한알 늘려가 영양제 컬렉터가 되어 버린 나. 아직 무리는 없는지 안 챙겨 먹을 때가 더 많긴 하다. 그런데도 빠짐없이 챙겨 먹는 건 딱 하나.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먹는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다이어트의 폐해로 남은 것 중 하나다. 소식을 일삼아 소화력이 굉장히 약해졌다. 아마도 장이 나보다 운동을 안 하는 거 같다.
이사 오기 전엔 코스트코가 가까웠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대용량 그릭요거트를 쟁여놨었다. 아침을 꼭 챙겨 먹던 때라, 출근 전에 간단하게 견과류나 과일을 토핑해서 먹으면 속도 불편하지 않고 딱 좋았다. 하지만 집을 이사하고 새로운 그릭 요거트를 찾아야 했다. 시중에 파는 몇 가지 제품을 먹어 봤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럴 때면, 그냥 만들어버린다.
우선, 준비물과 시간이 필요하다. 크기가 넉넉한 면 보자기 한 장, 우유 2팩과 ‘농후발효유’가 적힌 요구르트.
나는 전기밥솥을 이용한 레시피를 참고했다. 자취생의 밥솥인지라 사이즈가 작아 우유는 1500mL만 넣었다. 그리고 요구르트 대신 묽은 플레인 요거트를 150g 넣고 잘 섞어 줬다. 잠들기 전 늦은 저녁, 밥솥에 넣고 보온 버튼을 눌러준다. 아침 눈 뜨자마자 밥솥으로 달려가 열어 보고 싶지만,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해야 하는 법. 입을 헹구고 유산균을 챙겨 먹고 물 한 컵 들이킨다. 괜히 설레지 않는 척, ‘뭐… 잘 됐으면 좋고’라는 마음으로 밥솥을 열어 본다. 어젯밤 우유는 푸딩처럼 찰랑거리는 요거트가 되어 있다. 참 기특하다. 이제 깊은 통에 면 보자기를 받쳐 푸딩이 된 우유를 쏟아 부어준다. 면 보자기 끝을 잘 잡아 모아 손으로 살살 쥐어짜면 유청이 나온다. 유청을 활용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인도의 전통 요구르트 라씨(lassi)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릭요거트에 집중했다. 유청 빼는 작업은 간단하지만, 방식이 다양하다. 우리 집엔 마땅한 사이즈가 없어서 야채 탈수기 통을 이용했다. 유청이 빠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바닥 면에 맞는 작고 오목한 앞접시를 뒤집어 넣었다. 그 위에 탈수기 채반을 올리고 요구르트 품은 면 보자기를 올려 위를 곱게 접었다. 위엔 묵직한 글라스 볼을 올리고 랩을 씌운다. 냉장고에 몇 시간 두면 유청이 꽤 많이 나와 면 보자기에 닿을락 말락 한다. 유청을 한번 버려주고 이번엔 밥솥 대신 냉장고에 재워주면 된다. 시간에 따라 그릭요거트의 꾸덕꾸덕함이 달라진다. 나는 크림치즈 수준의 꾸덕함을 좋아해서 저녁 느지막이 그릭요거트를 ‘수거’했다. 꾸덕한 요거트는 묻어나는 거 없이 깨끗하게 떨어진다. 밀폐 잘 되는 유리병에 담아주고 제조 일자를 적어 붙인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식량이 생겼다. 그릭요거트를 크게 한 스푼 떠서 덜어두고 아몬드를 열심히 빻아준다. 개인적으로 아몬드는 가루처럼 빻을수록 맛이 좋았다. 토핑은 청포도, 사과, 블루베리 뭐든 상관없다. (귤은 별로였다) 중요한 건 꿀을 듬뿍 뿌려줘야 한다. 한 입 먹으면 너무 꾸덕꾸덕해서 입안에 과일, 꿀, 요거트가 옹기종기 모인다. 꿀이 묻지 않은 부분도 먹어본다. 고소한 맛은 신기하다. 들기름의 고소함, 고소한 원두커피. 이 그릭요거트는 깔끔하게 고소해서 토핑과 잘 어우러졌다. 유리로 된 디저트 볼에 세워진 그릭요거트 산은 아름답다. 꿀을 뿌려 윤기가 더해져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보석을 한 숟갈 씩 캐내 떠먹는 느낌이다. 덕분에 귀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