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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외의 Dec 13. 2021

빠뜨씨



안면 윤곽, 일명 돌려 깎기를 제일 잘한다는 전문의를 수소문해 겨우 예약을 잡는다. 시작은 간단하게 쌍꺼풀이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또렷한 눈과 어울리지 않는 작고 낮은 코가 보였다. 그렇게 콧대를 세우고 동시에 이벤트 가격으로 입꼬리 수술까지 했다. 그녀는 압구정까지 왕복 3시간의 거리를 무릅쓰고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빠뜨씨 들어오세요” 이름이 호명되자 떨리는 마음으로 상담실을 향한다.


전문가는 역시 달랐다. 의사는 빠뜨씨와 단 몇 마디 나누고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척척 견적을 내었고, 빠뜨씨는 그를 전적으로 믿기로 한다. 수술날짜를 잡고 예약금을 걸어두고 나온 빠뜨씨는 벌써 얼굴이 조막만 해진 느낌이 든다. 걸어가다 유리에 비친 본인의 얼굴을 손으로 턱과 광대를 가려 보며 작아질 얼굴을 상상한다. 그러다 눈의 초점이 유리창 속 얼굴에서 창에 붙은 포스터로 맞춰진다. [2021 미스밀 선발대회 :B.R.D.주최] 그 아래, 시상 내역별 상금 액수를 본 빠뜨씨는 불과 몇 분 전 결제한 예약금과 잔금을 떠올린다.


빠뜨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대회 접수를 한다. 대회까지는 기간이 꽤 남았지만, 수술 후 붓기를 최대한 빨리 빼는 게 관건이었다. 빠뜨씨는 수술날짜 잡은 기념으로 치킨을 시키려 했지만, 선발대회를 위해 오늘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수술 당일, ‘수술중’에 켜져 있던 라이트가 꺼지고 얼굴이 붕대로 칭칭 감긴 빠뜨씨가 나온다. 누워있는 빠뜨씨의 마취가 서서히 풀리고 점차 회복되고, 그녀는 곧바로 손을 뻗어 거울을 집어 들었다. 호빵 같은 붓기 속에 숨겨진 작은 얼굴이 기대된다. 수술 후 며칠간은 음식 섭취도 힘드니 살이 쭉쭉 빠질 거란 생각에 콧노래가 나온다.


선발 대회 당일, 거울 앞에서 준비 중인 빠뜨씨는 어제부터 금식하고 물만 마신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몰라보게 핼쑥해진 빠뜨씨는 얼굴에 하얀 파우더를 두드리고 최대한 날씬해 보일 코르셋을 조인다. 극한 다이어트 탓에 불시에 찾아오는 어지럼증을 위한 다크 초콜릿도 몇 개 챙겨 집을 나섰다.


대회가 열리는 아트홀에 도착한 빠뜨씨가 출입증을 받아 들고 입장한다. 펼쳐진 풍경은 생각하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한껏 꾸미고 등장한 빠뜨씨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피부에 징그러운 곰보가 피어난 소보로씨, 탄력이라곤 없는 푸석한 피부의 스콘씨 그리고 투박하고 여성스럽지 못한 깜빠뉴씨 까지 참가자 번호를 달고 자리했다. 대회가 시작되고 심사위원들은 노릇하게 구워진 피부와 풍부한 버터 향을 풍기는 참가자에게 시선을 뺏겼다. 반면에 며칠을 단식한 빠뜨씨는 무색무취했다. 결국, 사각 턱에 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식빵씨가 대상을 거머쥐었다. 빠뜨씨는 무언의 허탈감과 회의감에 빠진다. 그러다 어지럼증이 도져 눈앞이 핑 돌더니 빠뜨씨가 그대로 쓰러진다. 수상자를 위한 팡파르가 들려오고 하늘에서는 꽃가루가 날리며 쓰러진 빠뜨씨 위로 떨어져 내린다.




쿠키글
정신이 든 빠뜨씨. 그간 참아온 식욕이 터져, 눈앞에 참가자 슈크림 팥빵씨와 소세지빵씨를 먹어 치운다. 빠뜨씨는 자투리를 모아 만든 못난이 빵처럼 변해간다.  







pâte : 밀가루 반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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