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이 함께 떠난 캠핑이었다.
두 명은 충청도 사람. 캠핑 경력도 제법 되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처음이었다. 손에 흙이 묻는 것도, 무언가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도 낯설기만 했다.
텐트가 펼쳐지고, 장비들이 하나 둘 자리 잡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못했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호흡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나는 옆에서 조용히 작은 것들을 옮기거나, 그냥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지시하지도, 멸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캠핑이라는 낯선 세계를 설명하듯, 은근하게 행동으로 알려줬다.
“이건 이렇게 펴면 되고, 저건 각이 좀 중요해.”
그들은 마치 오래된 라디오처럼 조용히 주파수를 맞추는 사람들 같았다.
그 중 한 명은 고기를 기가 막히게 구웠다.
장작불을 조절하고, 연기 속에서도 묵묵히 굽고 또 굽는 모습.
검은 연기가 계속해서 그에게 흘러갔지만, 그는 눈을 찡그리지도, 짜증내지도 않았다.
끝까지 다 구워내고, 접시에 옮겨 담아 조용히 우리 앞에 놓았다.
캠핑 장비들도 놀라웠다.
온도를 맞춰 얼음을 만드는 장비, 전기로 따뜻해지는 에어매트,
부탄가스를 연결해 만든 작은 난로.
그들은 모든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왜 여자친구가 없지?’
그만큼 다정하고, 능숙하고, 따뜻했다.
밤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꼬대를 하던 한 친구가 벌떡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외부 텐트와 장비를 챙겼다.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어릴 때, 내가 자고 있을 때 조용히 비를 막고 창을 닫던 아버지의 뒷모습.
나는 사실 몸을 쓰는 걸 싫어한다.
그날도 장비들을 펼치며, 얼떨떨하게 서 있던 나 자신을 보며,
과거 훈련소에서 우왕좌왕하던 이등병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식사 후 설거지.
작고 사소한 기여였지만, 그마저도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받기만 했다.
부담도, 채근도, 눈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알았다.
내가 평소에 짊어지고 있던 고민들, 생각들,
모두가 이 조용한 산속 불빛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걸.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필요 이상의 무게를 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경기도에서 10년, 충청도에서 10년, 부산에서 10년을 살아왔다.
그 세 지역의 습관과 말투가 내 안에 고르게 섞여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
그 말이 그날 밤, 조용히 고기를 굽는 친구의 모습과
비를 맞으며 장비를 정리하던 친구의 실루엣에 겹쳐 보였다.
나는 그 불빛 속에서
이방인의 자리에서
따뜻함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