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이직 에피소드3
이직하고 얼마 안돼 크게 현타가 왔었다. 나름 교육 콘텐츠 사업/개발팀에서 인정받다가 인하우스로 와 바뀐 역할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워낙 큰 조직의 백오피스이다 보니, 일을 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밸류체인에 직접 기여하는 일도 아니라, “나는 여기서 어떤 기여를 하고 있지? 기여하고 있긴 한 걸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소리소문 없었다. 전국구로 4~6시간 돌아다니며 교육을 해도, ‘도움이 됐으면…’ 하고 열심히 기획을 해도, 무관심이나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느냐“ 하는 반응이 돌아오면 힘이 빠졌다. 교육도 오기 어렵다는 대상자 분들을 붙잡고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겨우 운영할 수 있었다.
나도 점점 일에 의미를 잃었다. 사람들은 교육에 관심도 없는데, 이번 교육은 그냥 효율적으로, 빨리 진행하면 되겠지. 그렇게 준비를 빠르게 마치고나서야 자세히 들여다본 교육은 너무 뻔했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 적어도 뻔하지는 않아야지.’ 사전 설문이라도 해서 뻔한 교육은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뻔한 교육보다 의미를 잃고 관성에 젖어버린 스스로를 벗어나고 싶은 맘이 더 컸던 것 같다.
“팀장님, 대상자 분들 지금 상태가 어떤지, 교육에서는 뭘 기대하는지 사전 설문해도 될까요? 교육에 조금이라도 반영해보게요.”
팀장님은 반응이 없을 거라 하셨다. 처음 보고할 때 사전 설문한다는 이야기가 없었는데, 갑자기 하면 말이 나올 수 있다고 걱정도 된다 하셨다.
“그럼 참여는 선택으로 하고, 커피 쿠폰 같은 걸로 참여를 유도하는 건 어떨까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면 해보고 싶어요…”
팀장님은 고민하다 허락하셨다. 계획엔 없던 일이지만, 여기저기 자료를 뒤지고, 책임님께 피드백도 받아 설문 문항을 만들었다. 사실 나도 큰 기대는 없었다. 그냥 관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발버둥이었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설문 결과를 열어보곤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관식 응답엔 글자가 빼곡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기대와 기대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불만들이 정성스레, 또 거칠게 담겨있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이었다. 교육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교육생이 우리를 슬쩍 불러내, 기대했던 내용과 다르다며 아쉬운 점을 이야기했다. 부끄러웠고, 감동이었다. ‘아, 이렇게 기대가 컸구나’하는 생각과 '나는 저렇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우리 구성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었다. 고민에 대한 답을 조금 찾은 느낌이었다.
현타는 지금도 종종 온다. 그리고 '내가 뭘 하는 걸까?' 생각이 들 때마다 이들을 생각한다. 그러면 묘한 사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하는 일이 티가 나지 않고, 잘 보이지도 않지만,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일에 기대와 작은 희망을 품고 있으니까.
TIP 4. 바뀐 조직에서 내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함을 느낀다면, 현장에 달려가 내 고객의 소리를 듣자. 은근한 기대와 희망이 섞인 소리를 들으면 나 역시 다시 희망을 품게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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