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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Oct 10. 2024

긴긴밤을 지나고 있는 당신에게

epilogue




“뭔가를 할지 말지 고민이 될 때는 일단 하세요.”      



누군가에게 어디선가 많이 듣던 말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오며 그와는 반대로 하지 않는 것을 택한 날이 많았다. 그것은 어쩌면 내 삶을 안전하게 구축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전지대 안에서 내 몸과 마음은 늘 안전했던가,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고 그 이듬해는 뜬금없이 암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어느 때도 상상한 적 없는 모습으로 덩그러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으니 할지 말지 고민이 될 때는 그냥 해버리자고. 물론 그건 도전 의식이라기보단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에 가까웠노라 고백해 본다.     



그러니까 정말로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이 브런치북을 썼다.      



유난히 무덥던 칠월의 어느 날, 브런치북 <무사히 마흔 살이 될 수 있을까>의 첫 글인 ‘무사히 마흔 살이 될 수 있을까’를 써서 올렸다. 그 짧은 글을 쓰기까지 꽤 힘들었지만 막상 첫 글을 다 쓰고 나니 마치 둑이 무너지듯 다른 이야기들이 술술술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일수록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셨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함께 눈물 지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무척 큰 위로가 됐다. 그들의 정성스러운 응원은 굳게 닫혀있던 마음에 똑, 똑, 문을 두드렸다. 노크에 응답하며 조금씩 문을 열면 열수록 내 세상은 더 넓어졌고 어느새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훅-하고 불어 들어와 그간의 땀과 눈물을 식혀주고 있었다.      

첫 글을 올린 것이 한여름이었는데 어느새 벌써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가을이 왔다. 시간이 쌓이고 쌓여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글을 쓰고 올리며 쌓이고 쌓인 마음들이 나를 변하게 해 주었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똑, 똑, 문을 두드려보고 싶다는

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너무나 아끼는 글을 소개하며 브런치북을 끝마치고자 한다.

사랑하는 소설 <긴긴밤>의 심사평이다.           



<긴긴밤> 속 주인공들은 우리의 삶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내 삶은 내 것이지만, 또 나만의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가 다리가 불편한 코끼리의 기댈 곳이 되어 주는 것처럼, 자연에서 살아가는 게 서툰 노든을 아내가 도와준 것처럼, 윔보가 오른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치쿠를 위해 항상 치쿠의 오른쪽에 서 있었던 것처럼, 앙가부가 노든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준 것처럼. 이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는 이어지고 이어져 불안한 검은 반점을 가진 채 버려진 작은 알에 도착한다. 작은 알은 모두의 사랑을 먹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세상으로 나온다. 윔보와 치쿠의 생명 줄을 잡고 태어난 아기 펭귄은 늙은 코뿔소와 함께 바다를 향해 걸으며 자신의 근원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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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 준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고통과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제 어린 펭귄은 자기 몫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검푸른 바다로 뛰어들 것이다.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낼 것이며,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고통과 연대와 사랑을 이 브런치북에 담았다. 그 모든 이들에게-  

내 삶은 내 것이지만, 또 나만의 것은 아니기에 우리 함께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자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 코끼리가 건네던 이 말을 당신에게 전하며 글을 마친다.           




p.s. 그동안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그리고 보다 유쾌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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