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윤이 Mar 26. 2022

회음부 방석을 들고

너에게로 가는 길 / 슬램덩크 오프닝(박상민)



2kg으로 태어난 작은 아이는 아직 세상을 만날 준비를 채 마치지 못했는지, 혈당조절을 힘들어했고 위험한 수준의 저혈당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구급차를 타고 근처 대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로 향했다. 내가 가장 기가 막혔던 건 그 모든 과정을 엄마인 내가 전혀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몸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누구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내 뱃속에서 내가 낳은 아이였지만 내가 내 손으로 아이를 지켜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다. 심지어 담당 간호사 선생님은 오로 때문에 패드를 갈아주러 오셨다가 내가 우는 것을 보고는 '산모님, 지금 너무 많이 울면 눈이 엄청나게 나빠져요. 그러니까 그만 우세요'하고 마음껏 우는 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아니 그러면 손바닥만큼 작은 내 아이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제 몸만 한 주사를 맞고 있다는데 어미라는 사람이 따라가 보지도, 멀리서 울지도 못하면 무얼 해야 하나요. 그래서 내가 찾아낸 방편은 그저 계속 기도하기였다. 모태신앙이긴 하지만 교회를 가본 지가 오래되어 기도는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가물가물했지만 그냥 일기를 쓰듯이 빌고 또 빌었다. 웃긴 건 아이가 빨리 건강을 회복하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 얼른 아이를 만나로 가게 해달라는 기도를 더 많이 했다. 하나님, 제가 진짜 앞으로 착하게 살 테니 제발 아이를 만나게 해 주세요. 너무 보고 싶어요. 제발 하루라도 빨리요.

하나님은 내가 정말 착하게 살리라 굳게 믿으셨던 건지, 생각보다 빨리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지금 이렇게 사는 걸 보고 계신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실까.


그렇게 병원에서 퇴원하고 조리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보러 가게 되었다. 태어나마자마 잠깐 안아주긴 했지만 그때는 아주 찰나였고 통증에 정신이 없어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내 기준에선 첫 만남을 앞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장기자랑 무대에 어정쩡하게 서서 객석을 바라봤을 때, 이제 막 사귀기로 한 남자 친구와의 첫 데이트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꼭 입사하고 싶은 회사의 면접 날 아침에, 아빠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섰을 때, 내가 쓴 글로 작은 상을 받아 들었을 때.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 인생의 그 어떤 순간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설렘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은 설렘과 긴장 그 어디쯤을 부유하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고로 노래가 필요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만큼은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근사한 비지엠을 깔아주고 싶었다. 그게 이 지루한 드라마에 대한 작은 예의라 생각하며 플레이리스트를 쭉 내리다 한 제목에서 딱 멈췄다.

너에게로 가는 길.

슬램덩크 오프닝 곡. 박상민의 노래. 지금 이 순간에 별로 안 어울리는 노래 같았지만(정확히는 좀 더 분위기 있는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제목 자체가 의심할 데 없이 너무나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렇게 플레이. 따다딴따다다다딴

경쾌한 밴드 사운드를 가르며 박상민 아저씨의 탁한 음성이 멋들어지게 등장한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우리 함께 한 맹세 위에 모든 걸 걸 수 있어.

힘든 시간들이지만 난 웃을 수 있어. 언제까지나 나를 믿고 사랑할 네가 있잖아.'



세상에.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차 안은 농구코트로, 나는 결정적인 경기를 앞둔 천재 농수 선수 강백호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누워 나를 기다리는 아이는 강백호가 짝사랑하는 채소연이 되었다. 그래, 차들이 빼곡한 강남사거리를 가르며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내가 병원에 누워서 했던 수많은 기도에 모든 걸 걸 수 있단다. 힘든 시간들이지만 난 웃을 수 있어. 왜냐면 언제까지 나를 믿고 사랑할 네가 있잖아! 농구공 대신 회음부 방석을 겨드랑이에 낀 채, 절뚝거리는 발걸음이지만 결승 경기를 앞둔 선수처럼 비장하게, 병원으로 들어섰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하루에 두 번, 삼십 분 씩만 면회가 가능하며, 부모만 들어갈 수 있고, 부모도 신분증 확인 후 마스크를 쓰고 위생 옷과 장갑을 착용한 후에야 들어설 수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이는 생각보다 더 작았다. 기계가 너무 큰 건지, 아이가 너무 작은 건지 어차피 안아볼 수도 없었지만 안아보게 해 준다고 해도 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는 작은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줄줄 났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면회실은 생각보다 소음이 심했지만 나는 여전히 '너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 다른 소리는 자체로 묵음처리가 되고 번잡한 주변 역시 블러 처리가 되어 그저 아이만 보이고 들렸다.


츄츄야, 츄츄야.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의 태명을 불렀다. 순간 내내 눈을 감고 가만히 있던 아이가 잠깐 눈을 떠서 (나라고 믿고 싶은) 어딘가를 바라본다.



'여기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 너의 시선을 느껴. 놓치지 않아, 바로 지금이야.

날 부르는 바람의 함성을 향해, 하늘을 향해 내 몸 던져

내가 있어 가슴 벅찬 열정을 끌어안고 벅차올라

외치고 싶어 crazy for you crazy for you 슬램덩크.



마치 덩크슛을 넣은 것 같은 황홀한 기분. 그렇게 나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crazy for you 되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몸이 어떻게 되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회음부 방석을 어깨에 메고 누구보다 씩씩한 걸음으로 매일매일 하루 두 번 아이를 만나러 다녔다. (현재로서는 약간 후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산후조리가 괜히 하는 건 아니라는 점.)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의 비지엠은 언제나 '너에게로 가는 길'. 엄마의 씩씩함이 아이에게도 감명 깊었던 건지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었고 생각보다 이르게 퇴원을 하게 되었다. 겉싸개에 푹 싸여서 눈도 못 뜬 채로 아빠와 함께 조리원에 온 작은 아이와 함께 지낸 지 이틀이 지났을 때, 아이는 급작스럽게 잘 먹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결국 다시 구급차를 타고 퇴원한 병원으로 향했고, 청색증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 아무리 지루해도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다. 그동안 우리 모녀 곁은 든든히 지켜주며 중심을 지켜나가던  남편마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위기감이 든 모양이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엄마인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새끼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누가 시키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솟아올랐고 차분하게 아이의 짐을 챙기고 조리원에서 작성했던 차트를 챙겼다. 그동안 내 우는 모습만 목격했던 조리원 식구들도 처음 보는 나의 단단한 모습에 다들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아이는 긴 대기와 힘든 검사들을 거쳤고 다시 인큐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아이를 신생아 중환자실에 두고 나오는 순간부터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을 할 때까지 나는 울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진짜 엄마로의 시작이라는 걸 깨우쳤던 것 같다. 내가 울면 아이는 얼마나 더 불안할까. 강인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서 있어야지.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속으로 혼자 주문을 외웠다. 다시 면회 라이프를 시작했을 땐 꽤 여유가 생겼고, 블러 처리되었던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 두 번씩 보는 똑같은 얼굴들. 하나 같은 굳어있고 긴장된 얼굴들. 그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계속해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어서 아이와 함께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하고. 사실 아이의 두 번째 입원기간 동안 딱 한 번 눈물이 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옆 자리 아가의 부모님 때문이었다. 단정하고 순해 보이는 아가의 부모님은 면회 시간 내내 인큐베이터에 몸을 가까이 기대고 노래를 불렀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신생아 중환자실에 울려 퍼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모두 조용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했겠지. 나도 그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다 눈물이 났었는데 그건 따뜻함의 눈물이었다. 저들의 플레이리스트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나. 나도 따라서 인큐베이터에 몸을 가까이 대고 나의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를 마음으로 불렀다.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고). 나의 마지막 순간은 너와 함께 할 거야 내가 가진 모든 행운을 너에게 다 줄 거야 영원한 건 없다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잊지 말아 줘 난 언제나 널 향해 있다는 것을. 그렇게 한 달이 흘러 퇴원하는 날 아침. 이젠 제법 바등바등할 줄도 아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껴안고 더없이 비장하게 걸어 나오며, 내 인생의 짧은 단막 드라마, '너에게로 가는 길'이 끝났다. 엔딩곡은 역시, 날 부르는 바람의 함성을 향해, 하늘을 향해 내 몸 던져 내가 있어 가슴 벅찬 열정을 끌어안고 박차 올라 외치고 싶어 crazy for you, crazy for you. 슬램덩크!






이전 02화 미래와 희망은 오로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