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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Hello, it's me.

<HELLO>/아델



출산 , 산후우울증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에게 산후우울증이란 그저 ‘산후우울증으로 생후 13  안고 투신한 엄마 같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브라운관 너머 세계의 낯선 단어일 뿐이었다. 평범하게 살아왔다 자부하지만 그래도  안에서 나름대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고 그때마다 무너지지 않고  헤쳐 왔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출산 이후에도 역시  의지대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지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까  무지하고도 어렸었다.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85%에 달하는 여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일시적으로 가볍게 지나가기 때문에 우울감이라고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때 자연소실되지 않고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10~20% 정도. 불행히도 나는 그 10~20% 정도 안에 해당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행인 건, 스스로 산후우울증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몸이 지속해서 피로했고, 매사가 짜증이 났다. 아이를 돌보는 일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의욕이 없었고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흘렀다. 평소였다면 대체 무슨 문제일까 나를 들여다봤겠지만, 그때는 출산 직후였고 아이가 계속해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과 마음이 이러한 상태를 경험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가 힘듦을 토로했을 때 어떤 이는 ‘야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며 함부로 떠들어대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임신 기간 동안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유발 상황의 경험이 있는 경우’, ‘아기의 건강이나 기질 등의 문제로 육아에 어려움이 많은 경우’,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나 미숙아로 출산한 경우’의 아주 타당한 산후우울증 위험 요인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설마 나는 아니겠거니 하며 방관했던 것이다. (그리고 불과 6년 전이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에는 산후우울증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하루 종일 내 품에서 떨어지길 거부하는 아이를, 정확히 말하면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목청 높여 우는 아이를 거의 24시간 아기띠로 안고 자고, 먹고, 화장실까지 함께 오가며 살았다. 9월생인 아이를 한창 바삐 돌보던 시기는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었고 잠시 바깥을 나가 바람을 쐬는 것조차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고립 생활이 시작되었다. 양가 부모님 모두 멀리 살았고 생업이 있으셨기 때문에 도움을 주실 수 없었는데 산후도우미 서비스는 무슨 이유인지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왜 도우미 이모님을 부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담스럽다’는 한 마디로 일축했지만 사실 그건 경제적인 부담보다는 나의 밑바닥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감정적인 부담이 더 컸다. 그래서 남편이 회사로 출근하는 아침부터 돌아오는 저녁까지 철저히 혼자 아이를 돌보며 19평의 작은 집에서 창문 밖으로만 시간이 그리고 세상이 흘러간다는 것을 확인했다. 좁아진 세상의 반경만큼이나 내 마음의 여유도 좁아져 갔다.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들을 사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고, 나를 찾아와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사실은 하나도 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아픈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탓하며 30년 가까이 부모님과 친구들의 사랑으로 쌓아온 자존감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던 것이다.   

 

그 당시 나의 유일한 소통창구는 라디오였다. 티브이는 괜히 아이에게 나쁠 것 같아 아예 켜지 않았고, 라디오를 주로 들었기 때문이다. 온종일 티브이를 보는 게으르지만 행복한 엄마가 티브이를 멀리하고 바지런을 떨며 우울한 엄마보다 낫다는, 그 당연한 걸 모르던 스물일곱의 내가 안쓰럽다. 어느 날, 한참을 울다 겨우 잠든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수유 소파에 앉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을 때, 아델의 신곡이 흘러나왔다. <Hello>  

‘Hello, its me’ 나지막한 음성으로 안부를 물으며 시작하는 노래.  

 

나는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보다 가사가 중요한 사람이라, 해외 팝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팝을 좋아하기엔 내 영어 실력은 수능과 토익 문제를 푸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영어를 아주 못하는 것이 아님에도 가사가 마음으로 와닿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듣는 그러니까 가사를 전혀 모르는 아델의 신곡을 들으면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아델의 깊은 목소리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그날 하루가 너무 고돼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병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몰라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스네어 비트가 점점 고조되며 ‘Hello from the other side’하고 절정으로 치닫는 노래를 가만히 들으면서 나는 자꾸 그 ‘Hello’라는 말이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Hello, it's me

안녕, 나야

I was wondering if after all these years you'd like to meet

궁금했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네가 날 만나줄지

To go over everything

만나서 우리의 사이를 돌이켜보고 싶어 할지 말이야

They say that time's supposed to heal ya

시간이 약이라고들 말하지

But I ain't done much healing

하지만 많이 나아진 거 같진 않아

Hello, can you hear me?

여보세요, 들리니?

I'm in California dreaming about who we used to be

난 우리가 꿈꿨었던 캘리포니아에 있어

When we were younger and free

우리가 더 어리고 자유로 왔을 때 말이야  

 

 

아델에 대해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떠오르는 신예 팝스타,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히트곡인 <Rolling in the deep>, <Someone like you>을 들어본 적이 있던 정도. 네이버 검색창에 ‘아델’이라고 쳤다. 그래미와 빌보드를 이미 스무 살 무렵에 모두 장악한 화려하고 당당해 보이는 금발의 외국 여성. 1988년 5월 5일 생. 슬하 1남, 2007년 데뷔. 낯설기만 했던 그 팝스타는 나와 동갑이었고 똑같이 아이를 하나 둔 엄마였다. 나와 동갑인 엄마라니! 순간 나와는 아예 존재 자체가 다르게 태어났을 것만 같은 지구 반대편의 사는 월드 팝스타가 마치 그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Hello>가 수록된 그녀의 3집 앨범 <25>의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내가 새 앨범에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면 이를 화해(make-up)의 기록이라고 칭하고 싶다. 나 자신과도 화해해나가고 있으며, 잃어버린 시간들을 회복해나가고 있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을 되돌려내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과거의 사소한 일에 매달려 있을 시간이 내게는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녀는 아들 안젤로를 낳고 난 후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아이가 생긴 뒤 제약이 많아져서 엄마가 된 것이 싫었다고. 그녀가 생각했던 산후우울증은 엄마가 자신의 아이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행동이었는데 아델은 그 반대였단다. 아이에게 집착했고 그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걸 뒤늦게 서야 깨닫고는, 비슷한 상황의 엄마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극복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번역되어 쓰인 담담한 어조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며 동시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 동병상련의 위로란 이런 것인가.

내가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나 역시 아이가 생긴 뒤 바뀐 세상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엄마가 된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고, 그러면서 역으로 아이에게 심하게 집착했다. 그것이 내 불안정한 심리에서 기반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자신의 부족함만을 탓하던, 무지한 내가 나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엄마가 된 것이 싫었다.’ ‘극복하려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가 부러웠다.

산후우울증에 걸린 엄마들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걸 1순위에 두지 않고 살아가려는 여성들을, 아이가 행복하려면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그저 모성애가 부족하고 이기적인 여자로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이 여전히 잔재하는 이 세상에서-   

본인을 포함한 모두에게 ‘안녕’이라고 화해의 메시지를 건네는 그 솔직함이, 사려 깊음이, 깊은 목소리가 내 마음을 울렸다.  

 

 

Hello from the outside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안녕,

At least I can say that I've tried

적어도 난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어

To tell you I'm sorry for breaking your heart

내가 너에게 상처 준 거에 대해 얼마나 미안한지 말하려고 애썼다고 말이야

But it don't matter, it clearly doesn't tear you apart

하지만 이건 상관없지, 더 이상 당신은 나한테 상처받지 않을 테니까.  

Anymore

더 이상은

Hello, how are you?

안녕, 어찌 지내니?

It's so typical of me to talk about myself, I'm sorry

늘 이렇게 내 이야기만 하네, 미안해

I hope that you're well

난 네가 괜찮길 바라.  

 

 

아델의 <25> 앨범을 만난 이후, 나는 산후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했다. 아이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가끔은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도,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기도 했다. 알고 지내던 한의사를 만나 상담을 하고 약을 지어먹었다. 일기를 잊지 않고 쓰기 위해 노력했고 복직을 준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이에게 갖는 불편한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아이가 사랑스러울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임과 동시에 결함투성이의 인간이라는 것을, 내가 나를 돌봐주어야 비로소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극복하려 노력했고 여전히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비행기에서 안전 교육을 할 때면, 꼭 보호자 먼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이후에 아이들에게 착용해주도록 교육을 한다. 즉 내가 살아야 아이도 살 수 있다는 것. 오늘도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마음속에 되뇌고 또 되뇐다. 그리고 ‘엄마 노릇’라는 험난한 바다에서 예상하지 못한 암초를 만나 균형을 잃을 때마다, 나는 2015년의 겨울 내음과 다짐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아델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곤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나지막이 안부를 전한다.  

 

헬로, 이츠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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