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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Jul 11. 2024

나의 암 수술일지(2)

episode 2-1



강윤아, 강윤아!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시 눈을 떴던 것 같기도 그때 남편 얼굴이 보였던 것 같기도 그러다 다시 눈을 감았던 것 같기도. 수술 직후의 기억은 모든 것이 흐릿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의 선명한 기억은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누군가 깨우며 잠들면 안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전신마취를 하고 5시간 넘는 수술을 했기 때문에 폐가 쪼그라들지 않게 계속해서 깊게 호흡을 해야 한다고 했다. 워낙 시키는 대로 잘하는 FM 인간이므로 당연히 잘 해낼 거라는 나의 확신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졸음이 밀려와 잠깐씩 졸다 깨다 했던 것 같다. 그러는 와중 느닷없이 남편이 병실에 나타났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엇 여기는 간호통합입원동인데.. 남편이 어떻게 들어왔지?’ 생각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주치의 선생님이 남편을 부르더니 잠깐 병실에 들어와서 같이 있다가 적당한 시간에 나가시라고, ‘특별히’ 허락해 주셨다고 했다.

꽤 긴 수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치의가 언제 나와서 코멘트를 할지 몰라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수술장 앞을 지키고, 수술 이후 병실로 이동할 때도 계속 울면서 쫓아오고, 회진을 할 때까지 병동 자동문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는 남편을 본 사람이라면 내가 의사여도 잠깐 면회를 허락해 줄 것 같긴 했다. 덕분에 나는 졸지 않고 호흡을 하며 회복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수술 전의 기억은 영상처럼 이어지는데 수술 후의 기억은 사진처럼 조각조각 잘려 있어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하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그저 통증들 뿐이다. 기도삽관 때문인지 목구멍이 아팠는데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목마름이었다. 물을 바로 마실 수가 없었기에 가제 손수건에 물을 묻혀 아주 조금씩 빨아 입을 적시는 정도로 갈증을 잠재웠다. 그리고 누운 채로 중간중간 자세를 바꿔주라고 했는데 그렇게 옮길 때마다 하반신 전체가 아팠다. 진통제를 맞고 있을 땐 그럭저럭 참을만했지만 진통제가 떨어지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계속해서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해야만 했다.


수술 후의 기억 중에 유일하게 선명한 장면이 있다. 계속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부터는 걸어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던 차였다. 자다가 일어난 새벽에 뭔가에 홀린 듯 몸을 일으키고 싶어졌다.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한 발을 딛고 일어서려는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뒤틀리면서 엄청난 고통이 몸을 덮쳤다. 출산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아아아아악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했다. 통증과 두려움에 헐떡이는 나를 보고도 간호사 선생님은 전혀 놀라지도 않고 내 상태를 확인하신 후 침대에 눕혀주고는 떠나셨다. 그때 홀로 남은 병실에서 복잡한 심정으로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들었던 모습 그리고 캄캄하고 고요했던 병실에 울려 퍼지던 내 비명 소리는 여전히 잊을 수 없이 생생하다. 꽤 큰 소리였는데도 그 누구 하나 동요하지 않고 조용하던 병동의 분위기가 참 생경했다. 마치 이런 일은 늘 있다는 듯이.     


그날 새벽 이후로는 그 정도까지 아픈 순간은 없었다. 아팠지만 참을만한 고통이었고 그 이후에는 살살 걷기 운동도 시작했다. 내내 1인실에 있었기 때문에 병동 복도를 걷는 운동 시간만이 다른 환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은 운동하다 힘이 들어서 가만히 서 있는데 엄마 또래의 한 중년 여성분이 나를 툭툭 치셨다. 뒤를 돌아봤더니 ‘아가씨, 바지에 피 묻었어요.’하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한 눈에도 핏기가 없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와중에도 내 바지에 묻은 피를 걱정해 주시는 모습에 나는 어쩐지 씩씩하게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다. 아가씨라고 불러주셔서 더 그랬던 걸까.


아프지만 시키는 대로 걸었고 밥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반 이상은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소변줄도 떼고 피 주머니도 떼고 나이답게 젊은 몸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빠르게 회복해서 수술 후 이틀 만에 제법 멀쩡한 모습으로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하기 전에 담당의에게 간단한 검사를 받고 퇴원 후 지켜야 할 주의 사항들을 듣고 약국에서 필요한 약들을 구매하고 병원비를 결제를 하고 마침내 퇴원을 했다. 로봇수술을 했고 1인실을 사용했으니 꽤 병원비가 많이 나왔지만 엄마가 예전에 내 앞으로 들어놓은 꽤 보장내용이 든든한 암보험이 있어서 걱정 없었다. 엄마는 옆에 없는데도 여전히 엄마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라는 엄마도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 퇴원을 하자마자 아이를 맡겨둔 시어머니댁으로 향했다.



아이가 보고 싶었다. 너무너무 많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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