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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Aug 27. 2020

"무슨 초상났냐?"(애도의 방식)

[영화로 풀어가는 죽음학 이야기] / <러브 액츄얼리> vs <써니>

"무슨 초상났냐?"(애도의 방식)

- 영화 <러브 액츄얼리, 2003> vs <써니, 2011>     


야, 무슨 초상났냐?


장례는 죽음에 대한 애도의 방식이다. 슬픔(sorrow)과 비탄(grief)은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적절한 애도와 비탄은 사별을 수용하고 떠나보낸 이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사별 이후의 온전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한다. 장례는 일종의 의식(ritual)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 문화적으로 그 방식과 절차는 다양하다. 앞서 소개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는 우리나라 전통방식의 장례절차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유교적 장례절차는 매우 엄숙하다. 그런데 <축제>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장례 마지막 날 가족들은 다 같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게 된다. 표정들은 모두 어둡고 분위기는 무겁다. 장례를 치르느라 힘들기도 했겠지만 유가족 입장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사람은 가족들에게 연신 "자, 여기요~ 웃으세요~ 김치, 김~치~ "를 연발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웃지 않는다. 이때 옆에서 주인공의 친구가 한마디 거든다. "야, 우리는 못 웃지만 너는 좀 웃어라, 웃어~",  가족들은 여전히 웃지 못한다. 그때 또 다른 친구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날린다. “야, 무슨 초상났냐?” 가족들은 그 한 마디에 그야말로 '빵' 터진다. 모두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서구권에서는 종종 고인의 추도사에 유머를 사용하여 장례식 분위기를 일부러 유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장례라는 의식에는 고인에 대한 추모의 성격이 담겨 있다. 서구권에서는 종종 고인의 추도사에 유머를 사용하여 장례식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아들 부시 대통령은 '슬픔 속에서도 웃자'며 아버지는 춤 실력이 형편없었으며 브로콜리를 못 먹었는데 그 유전적 결함은 자신에게까지 전달되었다는 조크로 추모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자신에게는 최고의 아버지였다는 대목을 읽을 때는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고인의 친구였던 심슨 상원의원은 조지 부시와의 유쾌한 추억을 떠올리며 슬픔에 빠진 유가족과 추모객들을 미소 짓게 하기도 했다.

<출처 : MBN 뉴스>

죽음과 사별이라는 슬픈 상황에서 유머를 사용하는 것은 슬픔을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의 한 장례식에서는 추모객들을 웃음바다로 만든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묘에 관을 내리는 과정에서 말이다, 웃음을 준 장본인은 바로 고인이 된 당사자였다. 관이 묘지 아래로 내려졌고 유가족과 지인들은 그 주변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관 안에서 똑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어디선가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여러분, ㅋㅋ 나야 나~ 여긴 너무 깜깜해, 답답해 죽겠는데~ 나 좀 꺼내 주면 안 될까 ㅋ, .. 이젠 정말 안녕이네~ ㅎㅎ" 고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들렸던 것이다. 지병을 앓고 있던 브래들리라는 한 남성은 평소 사람들 웃기기를 좋아했고 자신의 장례식도 슬픔과 눈물로만 채워지기보다는 사람들의 웃음도 넘쳐나길 바랬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쯤 아들의 도움을 받아 이와 같은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와 함께 탁자를 이용해 관을 두드리는 효과음까지도 완벽히 준비했다고 한다. 아무튼 장례식은 잠시나마 웃음바다가 되었고 조문객들은 고인에 대한 추억과 함께 죽음을 앞두고도 사람들을 배려하고 웃음을 주려했던 고인에게 더욱더 존경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죽음과 사별이라는 슬픈 상황에서 유머를 사용하는 것은 슬픔을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출처 : SBS 뉴스>

영화 <러브 액츄얼리, 2003>에서 리암 니슨(다니엘 역)은 아내의 장례식에서 오랫동안 아내와 함께 준비해 온 것이라며 아내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아내가 평소 좋아했던 경쾌한 분위기의 <Bye Bye Baby>라는 노래를 추모객들에게 들려준다. 물론 장례 예배를 마치고 아내의 관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 리암 니슨의 눈가는 슬픔으로 촉촉이 젖어있었다. 우리나라 영화 <써니, 2011>는 여고 동창들의 추억을 담은 작품인데, 친구 진희경(춘화 역)의 장례식에 모인 과거의 절친들이 그들의 모임 이름이기도 했던 'Sunny'라는 경쾌한 곡에 맞추어 단체로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진희경)의 유언이었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친구들이 추억의 댄스를 추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친구들이 추억의 댄스를 추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장례식에서 추모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만의 선곡 리스트를 준비 해 두거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배경음악과 함께 준비해 두는 것은 어떨까?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애도의 과정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애도 과정에서 고인과의 소중한 추억을 떠 올리려 하는 것은 죽은 자와 산자 모두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장례식의 슬픔과 엄숙함 속에서도 고인과의 유쾌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죽음과 애도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나의 장례식을 나 스스로가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하자면 <죽음준비계획서>다. 죽음준비계획서는 유언장에 담길 내용 외에도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죽음이 임박한 시점에서(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들과 자신의 장례 절차 등을 사전에 계획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임종 직전에 듣고 싶은 음악이나 죽음을 앞둔 자신에게 와주었으면 하는 지인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청각은 임종 직전까지도 비교적 양호하게 살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장례식에서 추모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만의 선곡 리스트를 준비 해 두거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배경음악과 함께 준비해 두는 것은 어떨까?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주인공이 아내를 추억하며 이렇게 소개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 아내가 여러분에게 작별인사를 하겠답니다. 물론 제 목소리를 빌어서가 아니라 예상하신 대로 쿨하게 ‘베이비 시터 롤러스’의 음악으로 말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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