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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Oct 21. 2023

드러나는 사건의 배후

무의식의 살인자 8화

*이야기에 나오는 이름과 단체, 사건 등은  모두 창작의 산물입니다.

Microsoft Bing AI 이미지

갑수는 자세를 고쳐 잡고 사건을 원점부터 검토했다. 우선 공통점을 추렸다. 사건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두 모녀만 빼고 혼자 살았다. 사건 발생 장소는 전부 서울의 외곽 빌라촌이었다. 사인은 예리한 칼로 인한 자상. 대부분 급소만 깔끔하게 노렸다.


단, 두 모녀 중 딸만 제외하고. 딸의 시신에 난 자상은 불규칙적이었다. 깊은 상처도 있고 약하게 베인 흔적도 여러 곳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자상의 일부가 방어흔이라고 추측했다.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범인에게 맹렬히 저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딸의 시신에서 범인의 DNA는 발견되지 않았다. 딸이 범인을 할퀴기라도 했다면 진범을 찾기 쉬웠을 텐데 말이다.    

 

순간 갑수의 머리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진범에게 딸은 변수였던 건 아닐까? 범인은 혼자 사는 엄마를 노리고 집에 침입했는데 갑자기 딸이 나타났고, 계획에 없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면 얘기가 얼추 들어맞는다. 실제로 딸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같이 살다가 최근부터 엄마 집으로 옮겨 지냈다고 했다. 범인이 사전 조사할 때까지만 해도 집엔 엄마 혼자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피고인들의 공통점을 따져봤다. 이들은 모두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지목하는 증거는 명확했다. 사건 현장에선 피고인들의 체모와 지문이 발견됐다. 반면 피고인들의 옷은 깨끗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족적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피해자의 피가 몸에 튀지도 않고 발자국도 없이 어떻게 살인이 가능한가? 심지어 몽유병 환자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갑수는 규홍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한편 CCTV 등 영상증거는 전무하다. 범인이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서울 외딴곳의 빌라촌만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몽유병 환자가 범인일 수 없었다. 갑수는 의사들 중 진범이 있을 거라 의심했다. 하지만 일단 피고인들에게 약을 처방한 의사들은 모두 달랐고,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다 같이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닐까? 일종의 살인 동호회처럼. 갑수는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멋쩍게 웃었다. 머리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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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병원이 들어선 건물의 부동산 등기를 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기엔 건물주가 누군지, 얼마를 대출했는지, 전 건물주나 전 세입자가 누군지 등 정보가 담겨 있다. 일반적인 사건 취재에서 등기 확인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사건에선 워낙 여론이 몽유병에 집중되다 보니 병원 등기 떼볼 생각을 못했다.


갑수는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 홈페이지에 접속해 피고인들이 다닌 병원의 부동산 등기를 확인했다. 병원들은 모두 세입자들이었고, 건물주는 각기 다른 이름의 법인이었다. 법인 이름을 검색해 봐도 별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결과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만약 같은 법인이 등장했다면 사건의 배후로 의심할 만했다.


갑수는 단념하지 않았다. 이번엔 부동산이 아닌 법인 등기를 조회했다. 처음 확인한 회사의 대표이사로 이미숙이란 여성이 등장했다. 두 번째 법인 등기를 확인하는 순간 갑수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같은 이름이 또 등장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도. 미숙이란 이름이 아무리 흔하기로서니 모두가 동명이인일 리 없었다. 등기에 나오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도 모두 일치했다.


도대체 미숙은 누구란 말인가?


(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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