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더 공부해도 마누라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삶에서 직면한 문제들이 너무나 시급했기 때문이다. 단어 시험에서 틀린 갯수 만큼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을 때 피부에 전해지는 아릿한 통증, 교실 뒤에 붙은 시험 순위표에서 내 위에 몇 명이 있고, 밑에 몇 명이 있는지 확인할 때 느끼는 우월감 혹은 좌절감. 사랑이 뭐네, 인생이 뭐네 하는 답 없는 논쟁에 골몰하고 있기에 그런 것들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문제집을 달달 외우고, 끝나면 며칠 쉬었다가 또 달달 외우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또 다른 ‘너’를 만났다. 그리고 좋아하게 되었다. 대놓고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수능 시험을 얼마 앞두고 나한테 물었다. 자기 좋아하냐고. 나는 우물쭈물대다가 그렇다고 답했고, 너는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나서 연애를 하자고 했다.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절대 못 받을 거라 생각했던 성적을 받았고, 못 갈 거라고 생각했던 대학에 갔다. 하지만 너는 지키지 않았다. 그 전에 이미 다른 남자가 생겨버렸고, 내 연락을 피했다. 이후로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너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사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대학을 가고 나서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고 나서란다.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더라면 나랑 안 사귀었을 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네가 원했던 건 나라는 인간인가 아니면 좋은 학벌, 그리고 그 학벌을 통해 얻게 될 높은 사회적 지위(물론 얻지 못했지만)인가. 만약 후자라면, 설령 너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지 않았다 한들, 정말로 나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고 한들 그 관계에 어떤 진정성이 있는가.
결국 모든 건 내 잘못이다. 이 결말은 이미 중학교 2학년 때 예정되어 있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상심에 빠져있던 내게 친구들이 너는 공부 잘하니까 나중에 좋은 여자 만나면 되지 않냐고 했을 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했을 때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결국 나의 비겁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유년 시절 내가 숭배해온 가치는 성적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보고,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그게 삶의 전부였다. 추구하는 바가 명확하니 해야 할 일도 명확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됐다.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그 가치에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내가 왜 너를 사랑하는 것인지,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뭘 해야 할 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는 두고 쉬운 문제 먼저 풀기로 했다. 일단 공부 먼저 하기로 했다. 사회적 지위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어른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니까 일단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너 역시 날 사랑하게 될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래서 너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원망하지도 않았고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