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리고 15살이 되던 해, 나는 너를 만났다. 같은 반에 있었던 자그마한 체구에 단발머리를 한 소녀였다. 어느 겨울날 창밖에서 비쳐드는 햇살에 너의 갈색 머리가 반짝였고, 그 순간 예쁘다고 느꼈다.
좋아했다. 네가 나에게 한 번 웃어준 것만으로도, 먼저 말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하루가 행복했고, 너의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을 때면 나도 괜시리 울적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는 날 좋아하지 않았다. 바구니에 든 큰 빼빼로도 선물해봤고, 편지도 써봤고, 그 밖에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너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그래서 주변을 돌아봤다. 어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끄는지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모습은 나와는 달랐다. 숙제도 제대로 안 해오고, 수업 시간엔 맨 뒷줄에 엎드려 자고 있고, 교복 바지나 줄여 입고 다니고, 앞니 사이로 침이나 찍찍 뱉어대는 양아치 같은 녀석들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한심한 놈들이라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어른들 말을 빌리자면 20년 즐겁게 산 대가로 80년을 고통스럽게 살게 될 놈들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내게 해줬던 칭찬과 인정, 그리고 그들이 약속했던 장밋빛 미래는 빛을 잃었다. 저 불한당 같은 녀석들처럼 되어서라도 네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이후의 내 삶 따위 어떻게 되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친구들은 말했다. 괜찮다고, 세상에 여자가 걔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너는 공부 잘하니까 나중에 성공해서 돈 많이 벌면 걔보다 예쁜 여자들이 줄을 설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여자가 많으면 무엇하나, 그 많은 여자 중 내가 좋아하는 건 너 하나뿐인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쭉쭉빵빵한 여자들을 만나면 무엇하나. 그들은 나라는 인간에게 이끌린 게 아니라 내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이끌린 거일 뿐인데. 내가 가진 것들을 잃거나, 혹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나타난다면 칼 같이 손절하고 그리로 갈아타 버릴 텐데.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건 내 삶에 던져진 최초의 질문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나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세상이 공부를 하라고 하니 공부를 했고, 다행히도 그걸 어느 정도 잘했다. 그래서 성과를 냈고 인정을 받았다. 나의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반에서 1등을 하냐, 3등을 하냐가 문제였지, 1등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느냐는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게 무너졌다.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주변의 어른들은 나를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인 나를 사랑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인 나를 두고 가치 없는 저들을 택했다. 어른들은 아직 우리가 철부지라서 뭘 모르는 거라고, 조금만 더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자기들 말에 고분 고분 따르게 만들기 위해 어른들이 나를 지금까지 속여온 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인간이 되어서 어떻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