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

너는 나의 종교였다.

by 김선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인턴 기간만 넘기고 정직원 전환을 포기했다. 그리고 논술학원에 취업해서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글을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러다보면 언젠가 최고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강사 생활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고등학생 시절 수능 시험을 마치고 수시 논술 전형을 보기 위해 두어 달 정도 논술 학원에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때 논술 강사는 마치 세상의 이면을 꿰뚫고 있는 현자처럼 보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단편적인 지식들만 달달 외우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내게 논술 선생님은 너희들이 받아온 건 인간 개개인의 잠재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회에 알맞은 부품을 양산해내기 위한 ‘훈육’일 뿐이라고 말했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모피어스처럼, 그가 나에게 그럴싸한 허울 뒤에 숨겨진 이 세상의 진실을 알려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강사 생활을 몇 달 해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어떤 것도 완벽히 옳지는 않다. 민주정치의 이면에는 중우정치와 포퓰리즘이 있고, 이성적인 소수에 의한 철인정치는 독재로 변질될 수 있다. 성장만 강조하다 보면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분배만 강조하다 보면 기업가 정신이 상실되어 성장이 더뎌진다. 그런데 강사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답을 제시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게 정말 정답인지, 심지어는 내가 직접 논술 시험을 치면 합격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 나는 학생들 앞에서 세상 모든 이치를 꿰뚫은 현자인 척 해야 했고, 학생들은 남들 다 하는 회사 생활 따위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때려치운 패배자가 하는 말을 받아적었다. 고등학생 시절 동경했던 그 논술 강사가 내게 건내준 건 세상의 진실을 보여줄 빨간 알약이 아니었다. 세상의 진실을 깨달은 것만 같은 달콤한 꿈에 취하게 해줄 파란 알약이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다녔던 논술 학원은 수업료가 매우 비쌌다. 그러니까 내가 논술 강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줄 알았다. 하지만 논술 학원은 일반 학원과 다르다. 국영수 수업은 일방향적이다. 강의만 하면 된다. 가끔 질문을 하는 학생도 있지만 많지는 않고, 인터넷 질문 게시판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니 대규모 수업이 가능하다. 100명이건, 200명이건 상관없다. 인터넷 강의를 찍는다면 1만 명, 10만 명도 가능하다. 그러니 단가가 싸더라도 실제로 벌어들이는 돈은 많다. 하지만 논술 강의는 첨삭을 해줘야 한다. 수업료가 비싼 대신 한 번에 10명을 소화하기도 힘들다. 초보 강사였던 나는 1~2명을 놓고 수업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문제였다. 학원 강사는 정규직이 아니다. 성공해서 일타강사가 된다면야 엄청난 돈을 벌겠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한 대부분의 강사들은 그냥 묻혀버린다. 그리고 일반 회사원들과는 생활 패턴이 다르다. 평일 오전에 쉬고,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오후, 그리고 수업이 없는 주말에 일한다. 아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길 바랐던 부모님이 보기에 논술 학원 강사가 제대로 된 직업처럼 비춰질 리가 없다.


그래서 불행해졌다. 공부라는, 세상이 나에게 부여한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해왔기 때문에, 그런 삶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반대의 삶을 살면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다.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불안감, 부모님의 한숨과 걱정 어린 시선. 그런 것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항상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었기에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몰랐다.



하지만 쉽게 그만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우습게도 너였다. 언젠가 강남역 근처 카페에서 너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너는 패션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자기 관심 분야에서 이색 경력을 쌓기 위해 동대문 새벽 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도 있다고 했다. 나는 글 쓰는 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해서 그냥 회사 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자 너는 결국 나는 현실로부터 도피한 게 아니냐고 했다. 당장 회사 생활을 때려치우고 글쓰기에 모든 걸 걸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의 위치에서 조금씩이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도전해볼 수 있는 길이 있을 텐데 그럴 용기와 근성이 없어서 부모님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이지 않냐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언젠가 다시 마주쳤을 때 그 꼴사나운 모습을 다시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내 방식대로, 내가 좋아하는 이 일로 성공해야만 했다.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설령 이 길이 내가 생각했던 길이 아니더라도 포기해선 안 되었다. 포기하고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패배자로 살아가는 게 더 떳떳할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그 일이 있고 6년이 흘렀지만 나는 한 번도 너를 만나지 못했다. 앞으로 또 한 번의 6년이 흘러도, 60년이 흘러도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논술강사로 성공하건, 아니면 그냥 현실에 순응하고 회사 생활을 하건 너는 아무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 네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말하자면, 너는 내게 종교였다. 신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 신의 머리카락이나 코딱지 같은 부스러기 하나조차 본 사람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을 믿는다. 신이 어딘가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이 선행을 하면 복을 내리고 악행을 저지르면 벌을 내릴 거라 믿는다.


사람들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건, 삶이 너무나 불안하고 힘겹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선한 행동을 하라고 한다. 그러면 뭐든 잘될 거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선한 사람들이 패배하고 악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모습을 너무나 자주 보게 된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인간의 마음은 흔들린다. 정말 선이 승리하는 건지, 아니, 애초에 내가 추구하는 게 선이 맞기나 한 건지. 사람들이 신을 만든 건 그래서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는 망상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멘탈을 잡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였다. 10대까지 추구해왔던 공부,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성공이라는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했으나 결국에는 막다른 길에 가로막혔다. 그래서 무엇 하나라도 의지할 게 필요했다. 그게 너였다. 앞으로 평생 볼 일 없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이라도 해야 그 혼란스러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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