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건 연애 아니잖아요?
5년쯤 전에 강남역 11번 출구 베스킨라빈스에서 친구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가 걔가 예쁘긴 했다고, 그런 애랑 한 번 자보지도 못하고 헤어진 건 아쉽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얘기 하지 말자고 했다. 친구는 갑자기 왜 정색을 하냐고 했다. 나는 그냥 얘기하기 싫으니까 하지 말자고 한 거라고 했고, 친구는 왜 싫냐고, 진짜 사랑했던 것도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잠시 동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울어버리고 말았다. 눈물은 한참 동안 멎지 않았고 나는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베스킨라빈스 스푼 모양을 한 핑크색 플라스틱 탁자에 한참 동안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많이 좋아했다, 어쩌면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사람을 갖고 장난치지 말아라.
사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네가 없는 자리에서도,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 앞에서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실은 그전에도, 다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솔직히 예쁘긴 했다, 못 따먹어서 아쉽다, 나한테 한 번 걸렸으면 못 헤어나왔을 거다, 전부 내가 했던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 친구는 그렇게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친구는 잘못한 게 없다. 내 마음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그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던 건, 세상의 기준에서 이건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연애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솔직히 섹스 안 한 거면 사귄 거 아니지 않냐는 말이 나올 때, 얼마 만나지도 않았는데 정이 들고 그리워할 거나 있냐는 말을 들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 내 사랑은 세상이 공인한 사랑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구나. 이건 사랑이 아닌 거구나. 너도 마찬가지겠구나. 누군가 연애를 몇 번 했냐고 묻는다면 너는 “음... 제대로 사귄 것만 하면..” 하며 뜸을 들일 것이고, 나는 그 제대로 사귄 것에 들어가지 못하겠구나. 너에게 나는 지우고 싶은 과거일 뿐이겠구나. 아직까지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자체가 추하고 더럽고 소름끼치는 일이겠구나.
단념은 더욱 집착을 만들고 단념은 더욱 나를 아프게 하고
어떻게 하죠 너무 늦었는데 세상과 저는 다른 사랑을 하고 있네요.
피할 수 없어 부딪힌 거라고 비킬 수도 없어 받아들인 거라고
하지만 없죠 절 인정할 사람 세상은 제 맘 미친 장난으로만 보겠죠.
- 엠씨더맥스 [사랑의 시]
그래서 우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면 나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했다. 내 마음이 어떻건 너의 마음속에서 나는 더럽고 음침한 스토커 같은 남자일 뿐이라는 것, 심지어 내 주변에 나를 아끼는 사람들조차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