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난 연애를 못할 것이다.
앞앞으로도 난 연애를 못할 것이다.
절망(切望). 끊을 절에 바랄 망. 희망, 즉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끊어버린다는 뜻이다. 정말로 그렇다. 모든 게 점점 더 나빠져서 버티고 버티다 결국엔 말라죽고야 말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사람들은 절망한다. 어느 취준생이 올해에 취업을 하지 못했다면 내년에는 나이가 많아지고 공백기가 길어져서 취업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럼 아마 내년에도 안 될 것이고, 내후년에는 나이가 더 많아지고 공백기가 더 길어질 것이다. 그렇게 그는 백수로 말라죽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직장인이 실적이 안 나오는 부서에 근무하고 있다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러면 그는 실적이 잘 나오는 부서로 옮길 수 없다. 그러면 내년에도 실적이 안 나오는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고, 내년에도 안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렇게 그는 한직만 전전하다가 말라죽을 것이다.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을 며칠 앞둔 어느 겨울날, 일과를 마치고 사당역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 연인을 보았다. 입을 맞추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 따윈 신경쓰지도 않고 꿀 떨어지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물고 빨고 있었다. 궁금했다. 어떤 감정일까. 저들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 걸까. 정말 저들의 눈엔 우리가 들어오지 않는 걸까. 저 두 사람이 만든 세계는 도대체 얼마나 견고하기에 4번 출구를 지나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는 걸까. 그러다 흠칫했다. 저들은 이제 겨우 스무 살 남짓한,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서른 살. 어른이 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것들을 겪고, 보거나 듣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알찬 20대였다.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앞으로 어떤 성취를 이뤄가고 싶은지를 정하긴 했다. 이제 달려나가기만 하면 된다. 꾸준히, 힘차게. 그러니 나는 나의 미래를 낙관한다. 내겐 그 정도의 근성과 재능은 있다. 하지만 연애에 대해서라면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능글맞고 유쾌하면서도 진솔하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지, 스킨십을 할 때 어떻게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지 하는 것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서른 살이 되었지만 여자를 대하는 나의 스킬은 아직 스무 살에 머물러 있다. 나는 스무 살만큼 풋풋하고 탱글탱글하지도 않고, 서른 살처럼 중후하고 능숙하지도 않다. 나이는 과장급인데 업무능력은 신입 사원이다. 그러니 여자들은 나를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연애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른한 살이 되고 서른두 살이 될 것이다. 여자들이 내게 바라는 남자다움의 기대치는 서른한 살, 두 살로 올라가지만 나는 여전히 스무 살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11년, 12년, 그 격차는 점점 커질 것이다. 연애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라죽어버리고야 말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중요한 건 진심이라고. 하지만 그건 여자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연애는 남자가 다가가고 여자가 승인해서 시작된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랑 자고 싶어서 한 번 찔러보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줄 준비가 되어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그러니 진심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심장을 꺼내어 보여준다 한들 마음을 알 수는 없다. 그러니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진심보다 중요한 건 겉모습이다. 진짜인 것보다 중요한 건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에서 여배우가 눈물 연기를 할 때 그 여배우가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듯이. 그러니 스킬을 쌓아야 한다. 많이 만나고 많이 따먹으면서 여자들에게 뭐가 먹히는지에 대한 나만의 빅데이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여자들이 남자의 진심을 정말로 중요하게 여긴다면, 정말로 그걸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나쁜 남자에게 버림받고 상처받는 여자들이 왜 있겠나.
또 다른 누군가는 어차피 한 사람 인연만 만나면 되는 것이니 횟수나 기간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나도 안다. 나도 여자를 한 번에 서너 명씩 만나는 카사노바가 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나도 나를 온전히 사랑해줄 한 사람이면 족하다. 하지만, 인연을 기다린다고 인연이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앞서 말했듯 연애는 대개 남자가 다가가서 시작된다. 여자는 기다리는 입장이다. 아주 못나거나 성격에 큰 하자가 있거나 도저히 남자를 만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게 아니라면 여자에겐 자기 순번이 돌아온다. 물론 그 전에 남자 경험을 충분히 쌓지 못했다면 가볍고 진정성 없는 남자를 걸러내는 선구안을 기르지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 불행한 연애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여자에겐 최소한의 기회가 오긴 한다. 반면 남자에겐 그럴 일이 없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안 다가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떤 여자가 나 따위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건 평생에 걸쳐 술안줏거리로 삼을 만한 대형 사건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나의 남자력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내겐 그 기술이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연애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그렇게 나는 말라갈 것이다. 절망(切望)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