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무기력해지는 루틴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했다. 집 앞 산책로를 따라서 왕복 3km 조금 넘는 거리를 달리고 나니 15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벤치에 잠깐 앉아 땀을 식히고 샤워를 하고 출근을 했다.
자취를 시작하고 한 동안은 이런 생활을 했다. 철봉도 하고, 푸쉬업도 하고, 집 앞에 작은 운동장에서 축구 연습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안 하게 되었다. 회사일이 바빠지면서다. 아침 8시에 가서 8~9시 넘어서 퇴근하기가 예사였고, 주말 출근도 잦았다. 그러다보니 운동을 게을리하게 되었다. 아침에 운동까지 하고 회사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운동을 하지 않았더니 더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해지니 운동이 하기 싫어졌다. 그게 반복되었다.
이러다 금방 아저씨 몸매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 회사 1층 흡연 구역에 가면 과장님이나 부장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아저씨다. 원빈의 아저씨나 이선균의 나의 아저씨 말고 진짜 아재.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지고, 몸에서는 담배 전 냄새가 나는 아재. 그런데 말이 과장, 부장이지 사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나도 1~2년만 있으면 과장이다. 심지어 그 아재들 중에서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있다.
얼마전까지는 그런 사람들이 나태하고 한심하다 생각했다. 나라고 대단한 자기 관리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야식과 술을 먹지 않고, 주말에 하루 정도 축구, 며칠 정도는 가벼운 맨몸 운동 정도를 할 뿐이다. 그 정도로도 군살 없고 균형 잡힌 체형 정도는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정도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영업사원 일을 그만 두고, 사무직으로 몇 달 일해보니 알 것 같다. 그들이 나태해서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들이라고 자기 몸이 망가지는 게 좋은 게 아니고, 몸짱이 되기 싫은 것도 아니다. 당장 살아남는 게 급할 뿐이다. 운동 따위에 체력을 낭비했다가는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아서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체력이 약해지는 건 오래 뒤에 생길 일이지만, 운동하고 피곤해서 사무실에서 꾸벅 꾸벅 졸다가 걸려서 짤리는 건 당장의 일이라서다. 가장 원초적 욕구인 생존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아 존중이나 소속감과 같은 고차원적 욕구로 이행할 수 없다고 했던 메슬로우의 욕구 계층 이론처럼, 당장 힘들어 뒤질 것 같은데 무슨 운동을 하고 살을 빼냐는 것이다.
흡연구역 아저씨들을 더는 무시하지 말아야겠다. 그들의 튀어나온 아랫배와 라운드 숄더, 거북목, 가느다란 하체는 나태함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영광의 상처다. 이렇게 앉아만 있어도 기가 빨리는 곳에서 10년, 15년을 버텨왔다는 증거다. PT받고, 식단하고, 바디 프로필 찍는 사람들보다 그들이 훨씬 더 대단하다. 나 같으면 절대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