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취업준비생 시절부터 1년 정도 스피치 모임을 했다. 내가 만들고 직접 운영한 모임이었다. 모임 이름이 ‘말하는 대로’였는데, 당시 즐겨보던 TV 프로그램 ‘말하는 대로’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들었다. TV 프로그램 ‘말하는 대로’는 유명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강연 버스킹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자극을 받기도 하고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다 보면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 나 자신의 삶이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이야기, 확신과 열정이 아니라 두려움과 좌절, 머뭇거림에 대한 이야기, 그렇게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들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큼이나 가치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모임은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다들 자기 잘난 얘기만 하기 바빴다. 이런 것이었다. 모임에 중고차 딜러를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올 때마다 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그걸 딛고 일어났고, 지금은 밤낮도, 주말도 없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고, 그래서 돈을 얼마나 벌고, 지점에서 몇 등을 찍었고, 그래서 얼마나 행복하고, 하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한심하다고 느꼈다.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이라면 나도 할 말 얼마든지 있었다. 나 역시 세상으로부터 주입된 가치에 충실하게 복무하고 탁월한 실적을 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다. 스카이라고 불리우는 대학 중 하나를 들어갔을 때 세속적 의미에서 내 가치는 정점을 찍었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 탈선을 했다가 그걸 딛고 일어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지만 나는 그런 경험을 할 일 자체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엘리트였고 언제나 선생님들의 총애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때였으면 나는 그런 친구하고는 겸상도 안했다. 그랬던 내가 그 친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던 건 나는 학벌 따위로 사람을 줄 세우는 속물적인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주입된 학력,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 있는 사회적 지위라는 가치 이외에 세상에는 무수히 다양한 가치들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많은 가치 중 하나인 돈을 좀 벌었다는 걸로 어깨에 힘주고 다니고 있다. 이미 학력이라는 또 다른 가치에서 정점을 찍어본, 그 덧없음을 느껴본 내 입장에서는 유치해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면접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다가 떨어졌는지, 어떻게 하다가 연애에 실패했는지, 부모님과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랑할 게 없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자존감이 낮아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그게 진짜 멋있다고 생각해서 그 이야기를 했던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취업을 하지도 못했고, 사랑에도 실패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실패자였다. 하지만 그 이면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았다. 나는 면접과 서류에 수도 없이 떨어졌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그것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계속 도전하고 있었다. 나는 사랑에 실패했지만 꼭 누군가와 진실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내가 현실과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건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길 바랐다. 보통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친구가 돈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멋있다, 부럽다, 하면서 환호를 보냈고, 내가 실패와 좌절, 망설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몰라 했다. 언젠가 모임을 마치고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데 그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현민씨 여자들 앞에서도 그렇게 해요? 여자랑 다 금방 헤어졌다느니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무슨 성기능에 문제 있는 줄 알아요.”
“시험이라는 게 뭐야? 앞으로 치고 나가는 거야. 그 흐름을, 그 리듬을 놓치면 완전 꽝이야. 24번 정답? 관심 없어. 나는 오로지 네가 이 시험 전체를 어떻게 치고 나가는가, 어떻게 장악하는가 거기에만 관심 있다. 실전은 기세야 기세. 알겠어?”
- 영화 <기생충>
그때 느낀 건 사람들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기세를 듣는다는 것이었다. 원시인들의 주변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위협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무기도,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줄 집도, 다른 원시 부족들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해줄 군대나 법도 없었다. 그러니까 남자가 중요했다. 법도, 국가도, 전기충격기도, 호신용 스프레이도 없었던 원시 사회에서 힘이 약했던 여자는 남자의 보호를 받지 않고서는 혼자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류의 오랜 진화 과정에 걸쳐 여자는 강한 남자와 약한 남자를 구별하는 눈을 발달시켰다. 그 본능은 오늘날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들은 강렬한 포스, 즉 기세를 가진 남자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그런데 기세와 생각의 깊이는 대개 반비례한다. 세상사는 양면적이다. 무엇도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 연애를 할 때 내 마음만 일방적으로 표현하다 보면 상대방이 질려할 수 있고,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다 보면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아예 알지도 못하게 된다. 회사일을 할 때는 신상필벌을 확실히 하는 게 좋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은 구성원의 창의성을 저해하게 된다. 배움과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이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타인의 생각도 내 생각만큼 타당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자칫 우유부단함으로 비춰질 수 있다. 여자에게 의견을 묻고 그 의견을 자기 의견만큼 동등하게 존중하려는 모습이 자기 생각과 행동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생각과 배움이 짧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 이거 먹자, 여기 가자 딱딱 정해준다. 타인과 의견이 부딪힐 때는 화를 내고 언성을 높여서라도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려 한다. 그건 분명 지적이고 세련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에게는 확신이 있다. 타인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자기 의견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세가 있다. 여자들은 그 기세로부터 느껴지는 강한 수컷의 향기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니까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게 좋다.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는 것도 해롭다. 굳이 필요하다면 재테크나 회사 업무, 자격증에 대한 책 정도만 읽는 게 좋다. 지식과 생각이 깊은 건 여자 만날 때 별로 좋은 게 아니다. 소위 말하는 문신돼지국밥충들이 예쁜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건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