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꿈을 이루다

작가

by 김선비

첫 책을 만들었다. 제목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던지는 치사하고 쪼잔한 질문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지 7년, 책을 쓰는 걸 목표로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한 지 3년 반만의 일이다.


살면서 이룬 가장 큰 성취였다. 물론 더 내세울 가치가 있는 건 학벌이긴 하다. 학벌은 좋은 직장과 연결되고, 좋은 직장은 돈, 좋은 배우자, 사회적 지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연결된다. 책 따위로는 그런 걸 얻을 수 없다. 책 한 권에 15,000원, 인세는 10%. 내게 떨어지는 돈은 1,500원. 지금 직장에서 받는 돈 만큼이라도 벌려면 1년에 30,000권은 팔아야 한다.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1,000권도 못 팔고 사장되는 책이 95% 이상이다. 내 책도 아마 그 95%에 속할 것이다. 책을 팔아서 부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가치는 그런 걸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내 꿈이었다. 좋은 대학 가면 좋은 직장에 가고, 예쁜 여자 만날 수 있다는 식으로 사회로부터 주입받은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세운 목표다. 내 안에 있던 이야기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냈고, 그걸 출판사에서 돈 주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 의미는 학벌 따위와 비할 수 없다.


주위 사람들도 다들 축하해주었다. 대단하다고, 정말 멋지다고 했다. 나는 솔로의 남규홍 PD님과 페미니즘 비평으로 유명한 오세라비 작가님이 흔쾌히 추천사를 써주셨다. 그래서 나는 뭔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남은 건 없었다. 책은 100권 남짓 팔렸다. 그중에 절반 정도는 아마 내 지인들이 사줬을 것이다. 공중파 토론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유명한 유튜브 채널에도 나갔지만 별 것 없었다. 그때뿐이었다.


아쉬움이 남는다. 왜 더 현실적이지 못했는지. 책은 분명 훌륭했다. 단순한 베스트 셀러를 넘어서 한국 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책이라고 자부한다. 이 주제를 다룬 어떤 작가도 이런 시각에서 이 정도의 독창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알려면 일단 읽어봐야 한다. 읽어보려면 책을 펴봐야 한다. 그러니까 제목과 표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가치관이 올바르고 유능하고 센스까지 겸비했다고 한들 못생기고 뚱뚱하면 이성이 말을 걸지도 않을 것이고, 자기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도 얻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런 책이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던지는 치사하고 쪼잔한 질문들]. 여기서 “치사하고 쪼잔한”은 반어법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여성성을 거부한다. 여성이라고 예쁘고 순종적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자들이 그들의 사상에 대해 논리적 질문과 비판을 던지려 하면 남자답지 못하게 쪼잔하고 치사하다고 한다. 자기들은 여자답길 거부하면서 남자에겐 남자답길 강요한다. 이 제목은 이에 대한 반발이다. 내가 한 번 총대 메고 끝까지 붙어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책은 물건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남자들이 평소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한 말들을 대신 해준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ctrl+c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다면 아마 조회수가 폭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은 물건이다. 들고 다녀야 한다. 집에서 혼자 휴대폰으로 몰래 스크롤바 내려가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여자들 앞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서점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자 점원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도서관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일하는 여자 직원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독서 모임에 가서 요즘 이런 책 읽는다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지하철에 타고 있는 젊은 여자 승객들 앞에서 펼쳐놓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는 이야기여서는 안 된다. 내용이야 어떻건 제목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제목은 너무나 공격적이다. 여자들 앞에서 내가 요즘 이런 책을 읽는다고 자랑했다가는 당장 여성혐오 일베충으로 찍혀서 손절당하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못했다.



아예 안티 페미로 색깔을 명확히 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든다. 내 책이 추구했던 건 안티 페미가 아니다. 공생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다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반은 맞다. 다만 나머지 절반이 틀릴 뿐이다. 그들은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인 남자의 시선을 외면해왔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균형을 추구했다. 남자가 보는 세상과 여자가 보는 세상이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른지 어떻게 서로의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을지. 이건 누구도 하지 못했던 시도다. 이준석도 못했고 신남성연대도 못했다.


그런데, 이준석이나 신남성연대가 그걸 할 능력이 없었을까? 내가 한 생각을 그들이라고 못했을까? 어쩌면 안 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걸 원하지 않는다. 자기 듣기 좋은 얘기 해주길 원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쪽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철저히 무시해야 한다. 이기적이고 비논리적인 페미들의 뚝배기를 깨주던지 아니면 젠더 감수성 풍부한 스윗 남페미가 되던지.



어쨌든 기회는 물 건너갔다. 주요 오프라인 서점 매대에서 내려갔고, 예스24 분야별 베스트셀러에서도 내려갔다. 얼마 전에 서평단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출판사에 문의해보았는데 이제 서평단도 안 한다고 한다. 출판사에서도 손을 놓은 것이다.


내 책은 팔리지 않고 사장되어버린 95퍼센트의 그저 그런 책들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내 인생과 꿈을 건 도전은 이렇게 맥없이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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