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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an 08. 2023

리얼돌을 둘러싼 헛소리들에 대한 헛소리들에 대하여-2

당신이 그들에게 보태준 게 뭔가?

리얼돌 논쟁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신선한 글을 발견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인용문들은 2022년 9월 1일자 오마이뉴스에 업로드된 <'리얼돌'을 둘러싼 헛소리들이 싫다>라는 기사에서 발췌했음을 밝힌다.


기사링크: '리얼돌'을 둘러싼 헛소리들이 싫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2. 섹스는 성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행위인 건 맞다. 근데, 그 사회적 교감을 당신이 해줄 건 아니잖아?

리얼돌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리얼돌은 '성적으로 소외된 남성'의 성욕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
2) 신체 장애인의 성적 행복 추구권을 위해 필요하다. 
3) 리얼돌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효율적인 성욕 해소'를 위해 리얼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매력과 노력으로 여성에게 구애해서 상호 동의 하에 성적 관계를 맺을 자신이 없는 남성, 신체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 남성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성적 만족을 추구할 방법으로 지목하는 대상이 다름아닌 가격만 수백, 수천만 원에 달하며 무게도 수십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리얼돌이라는 점이 참으로 이상하다. 가볍고, 사용법이 간단하고, 세척도 쉽고, 비용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렴한 원통형 자위 기구가 훨씬 효율적인데 말이다.
...(중략)...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성욕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인간을 향한 그리움을 품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도 사회적 관계에 따르기 마련인 책임으로부터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맞는 말이다. 매력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성격이 소심해서 연애 시장에서 소외된 남성들, 리얼돌의 잠재적 수요자가 될 수 있는 남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사실 단순한 성기 접촉을 통한 사정이 아니다. 타인과의 인격적 교감이다. 단순한 원통 형태의 자위 기구가 아니라 온전한 인간의 형태를 한 리얼돌을 찾는 건 그런 욕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리얼돌은 그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 리얼돌은 교감과 소통을 할 수 없는 실리콘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리얼돌에 의존해선 안 된다. 리얼돌에 성욕을 푸는 생활에 만족하다 보면 현실에서 여자들과 교감할 필요성을 점점 못 느끼게 되고, 사회성이 점점 떨어진다. 연애와 섹스, 결혼을 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리얼돌은 갖다 버리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클럽을 가건 동호회를 가건 길거리에서 헌팅을 하건 친구에게 소개팅을 받건 해야 한다. 리얼돌은 당장의 성욕에 대한 미봉책이 될 수는 있지만 인간 본연의 고독을 달래줄 동반자가 될 순 없다.

 그런데 그게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가?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책임지기 싫은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일을 열심히 하기는 싫고, 살을 빼고 싶지만 맛있는 건 먹고 싶고, 시험을 잘 보고 싶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싫은 게 사람이다. 글쓴이가 분석한 리얼돌 구매자들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향한 그리움을 품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만 사회적 관계에 따르기 마련인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는 건 그렇게 이상한 게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나도 별로 다르지 않다. 사랑받고 싶지만 거절당하고 상처받는 건 싫다.

 물론 글쓴이가 리얼돌 구매자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면 그걸 "심각한 문제"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방구석에서 음침한 취미를 즐기기보다 밖에 나가서 여자와 정서적 교감을 하고, 정상적인 방법의 연애를 하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그들의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 정도 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섹스는 단순히 성기와 성기를 접촉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서적 교감을 동반하는 행위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교감 없는 섹스는 공허함을 불러올 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걸 할 수 있는 건 다른 문제다. 리얼돌 구매를 진지하게 고려할 정도의 남자들이라면 아마 남자로서의 경쟁력이 부족한 남자들일 것이다. 그런 남자들은 애당초 정서적 교류를 할 기회조차도 얻지 못한다. 소개팅도 안 들어오고 먼저 살갑게 말 걸어주는 여자들도 없고 그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여사친도 없다. 여자와의 접점이 없다보니 여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점점 감퇴된다. 그러다보면 정서적 교감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순간이 온다. 인격적 교감이 불가능한 실리콘 덩어리로 당장의 말초적 쾌락이라도 충족시키는 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당신은 그들의 절망을 아는가? 누군가와의 정서적 교감을 원하면서 그 교감에 필요한 책임을 다하진 않는 게 그들의 심각한 문제라고 했는데, 정작 당신은 그들과 정서적 교감을 해줄 생각이 있는가? 그들이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들어줄 생각은 있는가? 그들에게 보태준 거 없으면 참견이나 하지 마라. 낙태도 개인의 권리라고 말하는 시대, 명절에 취직 얘기나 결혼 얘기 할 거면 돈 내놓고 하라는 시대에 방구석에서 혼자 외로움을 달래겠다는 게 뭐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나는 인간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존중이라고 믿는다. 상대를 인격으로 여기며, 나와 상대의 지성과 감성을 모두 존중하는 것, 이를 해내는 데에는 별다른 애정이나 매력이 필요하지 않다. 존중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필요하며 모든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이다. 성욕 해소가 아니라.

 물론 글쓴이가 나쁜 의도로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글쓴이는 외로워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향한 존중이라고? 이를 행하는 데에는 애정이나 매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모르는 소리. 세상은 전쟁터고, 이 전쟁터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건 그 인간의 가치다. 가치있는 인간에겐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은 존중받는다. 가치를 증명해내지 못한 사람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평생 몰려다닐 것 같던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도 각자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서로의 위치가 달라지면 점점 어색해지고 소원해진다. 그러니까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잘생기건, 웃기건, 힘이 세건, 돈이 많건 뭐라도 내세울 게 있어야 한다.

 남녀 관계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남녀는 짝짓기를 해서 각자의 유전자 절반을 가진 아이를 낳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남녀는 자기의 유전자를 오랫동안 널리 퍼뜨리는데 도움이 되는 이성에게 끌린다. 남자는 어리고 예쁜 여자에게, 여자는 돈 많고, 지위가 높고, 체격이 건장하고, 자신감과 공격성이 있는 남자에게 끌린다. 그건 상대를 인격으로 여기라느니, 지성과 감정을 존중하라느니 하는 그럴싸한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본능의 영역이다.

 글쓴이가 이 쉬운 걸 모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라서다.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훨씬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특출난 매력이나 장점이 없는 여자와도 성적 결합을 할 의향이 있다. 그래서 여자들은 글쓴이의 말마따나 별다른 매력이나 애정이 없어도, 상대방을 향한 존중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연애를 할 수 있다. 말 걸어주고, 먼저 다가와주고, 연락해주는 남자들이 다 있다. 그러니까 그 쉬운 것도 못하는 남자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글쓴이가 남자의 고독과 상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나도 여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지만 세상을 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르다. 남자가 여자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하나의 현상이 남자의 시선에서는 ‘돈 벌어서 아내에게 갖다 바치는 퐁퐁남’으로 보이지만 여자의 시선에서는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하느라 자기 꿈을 포기해버린 경력단절녀’로 보인다. 여자 BJ들이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섹시 댄스를 추고 애교를 부리면서 별풍선을 쓸어담는다는 하나의 현상이 남자의 시선에서는 ‘여자로 태어나서 편하게 돈 버는 보슬아치’로 보이지만 여자의 시선에서는 ‘여자에 대한 성적 착취를 조장하는 성 상품화’로 보인다. 원래 남의 인생은 쉽고 내 인생은 힘들어보이는 게 사람 마음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글에서 남자의 외로움을 말했지만 여성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까짓 외로움이 뭐가 대수인가 싶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못된 게 아니다.

 하지만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는 건 다른 문제다. 당신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건 생각보다 정의롭지 않고,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속물적이고 이기적이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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