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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an 02. 2023

리얼돌 논쟁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

진짜 위험한 건 그들이 아니다.

매춘은 평범한 활동이 아니며 사람을 사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성매매(섹스) 로봇과 성매매는 이러한 점에서 유사점을 갖고, 성매매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발견될 수 있는 관점입니다. 여기서 여성은 비인간화되고 비인간적인 인공물로 재구성됩니다. 성행위 역시 인격체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사랑, 그리고 성행위에 있어서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 여성들은 왜 ‘리얼돌’ 판매에 분노하는 걸까요, 한겨레, 2019-08-10

리얼돌부터 시작해서 성매매나 포르노, 그리고 각종 미인대회나 걸그룹의 선정적인 의상과 안무에 이르기까지, 성 상품화에 대한 논의를 할 때면 페미니스트들은 으레 이런 논리를 내세운다. 리얼돌과의 성관계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감정적, 사회적인 교감을 배제하기 때문에 이러한 성행위에 익숙해진 남자들은 여자를 언제든지 자신들의 성욕을 채워줘야 하는 성 노리개로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서운(어쩌면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지 모를) 사실을 하나 알려주자면, 여성을 감정적인 교류가 필요하지 않은 섹스 상대로만 여기는 건 오히려 가장 잘 생기고 여자한테 인기 많은 부류의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리얼돌이 단돈 오백 원이라고 해도 안 살 것 같은 남자들일수록 여자를 성 노리개로 여길 확률이 높다.



내가 잘 생기고 잘 나가는 남자들에게 열폭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정말이다. 주변에 잘 생기고 잘 노는 남자들치고 자기가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비결이 예쁜 말과 장기적인 헌신, 한 여자만 바라보는 순정이라고 하는 남자는 본 적이 없다. 그들은, 한 마리 동물로서 여자의 본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사람은 간절히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추해진다. 밑바닥을 보인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다.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남자 앞에선 한 마리 백조 같이 고고하던 여자들이 갖고 싶은 남자 앞에서는 놀라울 만큼 추해진다. 매력없는 남자 앞에서는 자기는 사람 오래 본다고, 일단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하던 여자들이 매력있는 남자 앞에서는 사귀기 싫으면 섹스 파트너라도 하자고 매달린다. 못생기고 매력없는 남자들이 야동에서 보는 걸 매력있는 남자들은 현실에서 경험한다.


그런 걸 보면 뭘 느낄까? 감정이란 허상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흔히 감정과 성욕이 별개인 것처럼 말한다. 자신들은 다정함과 예쁜 말, 배려에 이끌리는 존재들이지 저속한 성욕에 이끌리는 존재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오랫동안 변치 않는 순정과 헌신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감정이란 본능이다. 본능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걸 마주쳤을 때 우리는 좋은 감정을 느끼고, 생존에 위협이 되는 걸 마주쳤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맛있는 냄새를 맡거나 푸짐한 식사를 했을 때, 잠을 푹 잤을 때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다리가 수십 개 달린 벌레를 보거나 구역질나는 냄새를 맡으면 불쾌감을 느낀다. 여자들이 어떤 남자 앞에서는 설렘을 느끼지만 어떤 남자 앞에서는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남자가 (훤칠한 키와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태도 등으로 대변되는)우월한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남자와 결합해서 태어나게 될 잠재적 아이가 오랜 시간 번성할 수 있을 것이란 육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 남자에게 끌리는 것이다. 결국 감정과 성욕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욕망이 동하면 감정을 느끼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욕망이 강렬하면 감정적 교감을 건너뛸 수도 있다. 오늘 만난 남자와도 섹스를 할 수 있고, 연애를 배제한 섹스 파트너 관계만 유지할 수도 있다. 그게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들이 겪는 일상이다.


오히려 리얼돌의 잠재적 구매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순진한 남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일 수도 없고, 내 고민을 들어주고 나를 위로해줄 수도 없는 실리콘 덩어리를 수백만 원 주고 사는 남자들이 어떤 남자들일까? 당연히 매력 없는 남자들일 것이다. 그런 남자들 앞에서 여자들이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고고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오빠 같이 좋은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우리 좋은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면 안 되겠냐, 난 원래 쉽게 마음을 여는 편이 아니다, 라고 했을 것이다. 원래 사람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들 앞에서는 초연하고 점잖아진다. 그런 모습만 봐온 남자들과, 제발 섹스라도 해달라는 말을 들어온 남자들 중 누가 더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겠는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여자와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여자는 언제든지 내 성욕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고 믿는 남자가 미쳤다고 리얼돌을 수백만 원 주고 사겠나? 당장 집 앞에 샴푸 나이트로 달려가지.


그런데 왜 여자들은 오히려 리얼돌 구매자들이 더 위험하다고 할까? 답은 아까 나왔다. 감정이다. 감정은 일종의 경보 시스템이다.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걸 보면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위협이 되는 걸 보면 부정적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못 생기고 매력없는 남자는 생존에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의 유전자와 결합했다간 열등한 자식이 태어날 것이고, 그들은 아마도 생존하고 번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싫은 거다. 그냥 방구석에서 누구와 교류하지도, 누구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고 혼자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것도 꼴보기 싫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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