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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Dec 29. 2022

남자는 여자한테 안 된다

안티 페미니즘 운동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설거지론, 베트남론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우영우론이란다. 한국 여자들은 죄다 노처녀들이라 결혼해봐야 자폐아 밖에 안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들이 의도하는 건 결국 한국 여자 보이콧이다. 돈만 밝히고, 남자 알기를 개똥으로 알고, 신데렐라 드라마에 찌들어서 눈만 높아진 한국 여자를 만나느니 차라리 어리고 탱탱하고 순수하고 남자를 떠받들 줄 아는 베트남 여자와 국제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이론들이 진지한 사회 운동으로 번질 것 같진 않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야 다들 한국 여자랑 결혼 안할 것처럼 말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앞으로도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한국 여자를 위해 데이트 비용을 내고, 차를 몰고 에스코트를 나가고, 카페나 식당, 대중교통에서 편한 자리를 양보하게 될 것이다. 설거지론이니 베트남론이니 하는 건 커뮤니티에서나 유행하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다.


세상사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용의자의 딜레마라는 게 있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공동체에게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을 말한다. A와 B라는 용의자가 심문을 받고 있다. 이 때 최선의 선택은 A와 B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둘 다 증거 불충분으로 3일 간의 구류만 살고 풀려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기심 때문이다. 만약 A가 침묵을 지켰을 때 B가 A를 배신하고 죄를 자백한다면 B는 3일 간의 구류 조치도 없이 바로 풀려날 수 있다. B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A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A와 B는 둘 다 자백을 하고, 둘 다 유죄 판결을 받고 감방에 갇히게 된다.


용의자의 딜레마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에 적용된다. 학교 폭력은 왜 일어나는가? 일진이 싸움을 잘한다 한들 효도르나 추성훈처럼 잘하진 않는다. 왕따 두세 명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그러면 더 이상 괴롭힘 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기심이다. 내가 일진에게 도전했을 때 네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는 혼자 일진에게 두들겨 맞을 것이다. 하지만 너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한다. 그래서 너도 도전하지 못한다. 소수의 일진이 다수의 보통 학생들 위해 군림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여성의 권익을 위한다는 페미니스트들이 정작 '같은 편'이어야 할 여자들로부터도 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그런 이유다. 만약 모든 여성들이 일제히 탈코르셋(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거부하는 것)을 한다면,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기르고 하이힐을 신고 다이어트를 하기를 거부한다면 여성들은 편해질 것이다. 화장도 안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옷도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기심이다. 만약 다른 여자들이 모두 탈코르셋을 했는데 나 혼자 외모를 꾸민다면, 다 못생겼는데 나 혼자 예쁘다면 내가 모든 남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싫어할 여자는 없다. 다만, 다른 여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너도 나도 외모를 꾸민다. 내가 5cm힐을 신으면 너는 8cm힐을 신고, 내가 피부과에 가면 너는 성형수술을 한다. 그래서 '꾸밈노동'이라는 건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안티 페미니즘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모든 남자들이 한국 여자와의 연애 및 결혼을 거부한다면 한국 여자들은 남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자에게 데이트 비용이나 비싼 선물을 요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결혼 비용도 반반씩 해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여자를 위해 돈을 쓰길 거부할 때, 나 혼자 여자를 위해 카드를 긁고 전세집을 마련해온다면? 나는 스윗 달달 여심 폭격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트와이스도, 레드벨벳도 내게 한번만 만나달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여자에게 감히 돈을 쓰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더욱 최악인 건, 여자는 남자를 포기해도 남자는 여자를 절대 포기못한다는 것이다. 소개팅 어플에 남자가 많은가? 여자가 많은가? 이성에게 연락처를 물어보고 먼저 연락하는 건 주로 남자인가? 여자인가? 돈을 더 많이 내는 건 누구인가? 다 남자다. 아쉬우니까 그런 것이다. 여자를 많이 만나본 남자는 카사노바, 알파메일이지만 남자를 많이 만난 여자는 걸레 취급을 받으니까, 성 경험이 없는 남자는 모쏠 아다라는 조롱을 받지만 여자는 고결하고 정숙한 처녀가 되니까 여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남자를 굳이 만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덜 아쉬운 여자들조차도 끝내 남자들로부터의 관심을 져버리지 못했다. 차라리 '꾸밈노동'을 하길 택했다. 그런데 남자들 따위가 여자를 안 만나길 택하겠다고? 그게 될까?


그러니까 우리는 앞으로도 한국 여자를 만나기 위해 분투하게 될 것이다. 한국 여자를 위해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자존심을 굽히고 온갖 투정을 받아주게 될 것이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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