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리폼드>
1946년생. 한국식 세는 나이로 75세가 된 노장 감독 폴 슈레이더는 신작 <퍼스트 리폼드>에 이르러 새로운 경지에 진입했다. 지금 막 터질듯한. 당장이라도 비등점을 돌파해릴 것 같은 긴장감을 영화 전반에 불어넣으면서도, 덜컥 멈추어서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성찰하고 묵상하는 구도자적 태도가 공존하는 신작 <퍼스트 리폼드>는 여전히 폴 슈레이더가 논쟁적 작가임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폴 슈레이더는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한 일련의 작품들만으로도 이미 세계영화사에 등재된, 거대한 족적을 남긴 영화인이다. 폴 슈레이더는 마틴 스콜세지의 초기 걸작들. <택시 드라이버>(1976), <성난 황소>(1980),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의 각본을 썼다. 1978년 영화 <블루 칼라> 부터는 감독으로 전향해 감독과 각본을 겸직했는데 특히 <아메리칸 지골로>(1980)는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일리시한 스릴러 영화였다. 그러나, 이후의 영화들이 직접적인 주목의 대상이 된 경우는 적어도 국내의 경우 그렇게 많지 않았다. 폴 슈레이더는 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왔으나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 마저도 낮은 평가를 받으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2017년. 폴 슈레이더는 <퍼스트 리폼드>를 내놓았고 다시 논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퍼스트 리폼드>의 국내 정식 개봉은 2019년이나 2017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영화다)
이미 기업형 교회가 되어버린 거대 교단 ‘풍성한 삶’교회의 전신이자, 올버니 주의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교회면서 이미 관광장소가 되어버린 덕에 실제 신도는 많지 않은 교회 ‘퍼스트 리폼드’의 담임목사 톨러 목사는 지금 병을 앓고 있다. 실제로 ‘어떤’ 질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점점 쇠약해져가는 육체를 붙들고 톨러 목사는 일기를 쓴다. 자신 안의 욕망, 덧없는 욕구, 자만심, 진실하지 못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그것을 지우지 못하게 손으로 쓴다. 그러던 어느 날 극렬 환경운동가인 자신의 남편을 상담해달라는 부탁을 해온 신도로 인해 신도의 남편을 상담하다가 톨러 목사는 점점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변화함을 느낀다.
<퍼스트 리폼드>는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무의미해지는 영화다. 그렇게 젠 체하지도, 빈약한 이야기를 성경 구절로 뒤덮어 난해한 척, 있어보이는 척 하지도 않는 영화다. 이야기의 발단을 명료하게 설명해주고 주인공이 겪는 가치관의 혼란을 우리에게 체험하기 위한 논쟁적 대화 장면속의 대사 역시도 친절하면서도 확고하게 되어 있어 오독의 가능성을 줄인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면 끊임없이 해소되지 않는 질문들이 생겨난다. 그 누구보다도 독실하고 신실한 목사인 톨러는 찾는 이 없는 관광명소의 관광가이드 이상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더 이상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는데 관심이 없는 본당의 주임신부는 물질적 풍요로움에 매진한다.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종교개혁가이자 학자인 ‘마틴 루터’는 면죄부를 판매하던 부패한 로마 카톨릭을 개혁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러나 본당의 주임신부는 마틴 루터가 성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쓸 때 화장실에서 썼다는 일화를 인용하면서 낄낄 거릴 뿐이다. ‘외피적’으로는 주의 권능을, 주의 역사함을, 주의 사랑을, 주의 말씀을 둘러쓰지만 실제로는 ‘부’를 위해 에너지 기업의 사장이자 교회의 주요 물주를 만나보라는 제안을 하는 본당의 태도는 톨러에게 있어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회의에 빠지게 한다.
톨러가 면담하는 신도의 남편. 극렬 환경운동가인 이 사람과의 만남과, 교회의 주요 후원자인 에너지 개발기업의 대표는 <퍼스트 리폼드>가 제기하는 또다른 문제의식인 ‘환경 문제’에 연결되어 있다. <퍼스트 리폼드>는 톨러의 입을 빌려 주의 피조물들이 주가 잉태하신 이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행위에 교회가 침묵하고 있음을 매섭게 지적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대답없는 질문이 발생한다. 이것마저도 주의 안배인가. 그래서 더 이상 주의 인내력이 남아있지 않을 때 주께서 직접 이 세계를 정화하실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주의 말씀을 대리하는 자의 태도인가. 아니면, 주가 움직이기 전에 주의 말씀을 대리하는 자들은 이 세계를 정화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하는가. 두 입장 모두에 논리가 서있고, 옳고 그름으로 섣불리 나눌 수는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퍼스트 리폼드>를 만든 폴 슈레이더의 성향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폴 슈레이더의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이 우스꽝스러워지더라도, 자기의 신념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믿음에 타인들이 응답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정의가 사회에서 용인받지 못하더라도 그게 옳다면 믿고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퍼스트 리폼드>의 주인공 톨러 역시도 폴 슈레이더적 인물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톨러는 직접 행동의 영역으로 돌진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세상을 근심하던 노장 감독은 덜컥 멈추어서서 고요한 명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라스트만으로도. <퍼스트 리폼드>는 인생의 113분동안 스크린을 바라보는 행위가 여전히 숭고할 수 있음을 증거한다.
※ 이 글은 2019년, CJ의 매거진 '채널 CJ'의 코너인 '아트하우스 칼럼'을 위해 썼다. 발행된 글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원래의 판본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