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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남자, 처음 겪는 그리움

[Essay]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꾸는 꿈

by 한은

[9] 절제


흔히 표현 못하기로 소문났던 경상도 Of 경상도 남자이다. 꽃을 받았을 때 고맙다는 말과 표정을 조금이라도 밝게 했더라면 꽃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좋았을텐데 아무 표정이 없어서 오히려 혼이 났었다. 내 마음은 너무 좋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못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숙사에 돌아와서 거울을 보며 표정 연습을 열심히 했다. 거울을 보니 내가 가진 표정이 다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는데.. 진짜 별로였다. 거울로 봤던 내 표정 그대로 꽃을 받았다는 생각을 해보니 끔찍했다. 왜 H가 꽃을 주면서 왜 화냈는지 알 것 같았다.


꽃을 준비할 때 전해줄 사람을 생각했다는 그 섬세함이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더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다. 꽃을 받았으니 언제 한번 맛있는거 같이 먹으러 가자며 H에게 말하고 싶었다. 꽃을 받은 다음 날 바로 말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바빠지기 시작했다. 공부량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창업 이후 시작된 미팅 일정들과 알바와 과외를 빼기 어려운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2주, 한달이 지나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는데 H가 수업 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실험 팀플 단톡방도 나가면서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카톡도 사라지고 연락이 더 닿기 어려워졌다. 같이 밥 먹고 싶다고 문자를 남겨도 답변은 없었지만 종강을 해서야 팀원들과 함께 연락을 받았던 문자 내용은 몸이 많이 아픈 편이고 가족들도 아프신 분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H의 몸을 챙기고, 가족들을 돌보다가 몸이 괜찮아지면 수능을 다시 봐서 대학을 나중에 다시 시작하고 싶가며 연락이 왔다.


학번 동기여서 가장 친하게 지냈지만 H의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 모든 일들이 내 책임처럼 들리면서 마음이 굉장히 싱숭생숭하기도 했고 심란했다. 물론 말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있겠지만 너무 후회가 되었고, 꽃다발을 받은 이후로 전혀 만나지 못할거란 생각을 못했다. 한동안 H가 너무 보고싶었다. 친하게 지낸 친구의 빈자리가 갑자기 생겨서 너무 공허하고 외롭고 힘이 없었다. 나의 대학교 신입생 라이프를 요약해보라면 공대 수업이 대부분이라 말 할 수 있는데 학과 동기들과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공대에서 만난 실험팀원들이 나의 신입생 라이프에서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꽃을 받아서 나를 꽃으로 만들어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더 멋진 꽃으로 내가 만개시킬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나의 지난 시간으로 인해 감정소모도 했고, 후회도 많이 했던 신입생 대학 라이프였다. 그래서 내가 새롭게 꽃을 전해줄 사람들에게 먼저 만개해서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고 싶은 것도 있지만 지구의 70억명 중에서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만났다는 것은 인연을 뛰어넘은 필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낭만보다는 감정소모가 더 많은 대학 라이프이지만 나는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는 낭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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