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꾸는 꿈
[26] 낮아지는 것이 가장 높아지는 것이었더라
1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10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과학관 큐레이터로 일을 하면서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며 잘 지냈지만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후회가 가득했던 22살의 시작이었다. 지난 10개월도 눈물뿐이었는데 그 후회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 물을 때 1년간 중앙아시아에 있었다는 것이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20대라면 당연히 배우게 되는 감정소모와 결단들, 그리고 "나"를 만들어 가는 시간을 우즈베키스탄에서 조금 더 일찍 배우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앞으로 어떤 선택들을 하며 살아가야 하고, 나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조금 더 빨리 경험한 해외를 통해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았고, 이 넓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나의 시선과 생각을 넓힐 수 있었다.
내가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어도 같은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의 존재를 기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내가 줄 수 있는 "나의 시간"을 중앙아시아 사람들에게 주면서 즐거운 21살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배워왔던 수단과 방법들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사람들을 변화시켰던 것을 보고 왔다. 우즈벡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언어를 열심히 공부했었지만 언어를 못할 때 사람들이 나를 더 즐거워했었다. 그래도 지역마다의 사투리로 우즈벡어를 할 줄 알았는데 사투리를 말할 때마다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언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만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직장을 가게 되었는데 과학을 말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큐레이터로 일을 하면서 복학 준비를 하게 되었다. 퇴근을 하면 이상하게 우즈벡 말이 자주 들려서 뒤를 돌아보면 항상 우즈벡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달려가 우즈벡 말을 하면서 서로 수다 떨고 우즈벡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서 친구가 되기도 했고, 우즈벡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같이 놀기도 하고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대학생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고, 환영받지 못했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 힘들고, 어려웠고, 환영받지 못했던 그 시간을 "은혜"라고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22살이 되어서 2학년 2학기를 준비한다. 작년보다, 어제보다, 한 단계 레벨업 해서 복학을 준비하는데 새로운 설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