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孤溫)

: 36.5°C

by 유영

외로움에는 두 개의 빛이 있다. 하나는 눈이 부셔서 아프고, 하나는 희미해져 가서 슬프다. 세상은 한껏 밝은데 그 밝음이 내게 닿지 않을 때 아프고, 함께 있는데 나를 향한 상대의 빛이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낄 때 슬프다. 이렇듯 각자의 외로움은 서로 닮은 듯 다르고 그 깊이를 재려 하면 할수록 더 아득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좋든 싫든 언젠가 무리 속에 던져진다. 외로움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부터다. 이미 아주 어릴 때부터 언제나 곁에 있었으나 그것이 무언인지 알게 되는 건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타인의 온도가 내게 스며들면 스며들수록 내 온도는 이전과 달라져 갔고, 그러다 알게 되고 말았다. 모든 관계는 서로의 온도가 엇갈리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닮고 싶었고, 닮아가려 했지만 같은 열로 타오를 수는 없었다. 그 어긋남 속에서 배운 것이 바로 외로움이다. 36.5°C. 더 뜨거워져서도, 차가워져서도 안 된다. 나는 적당히 나를 데우는 법을 익혀갔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함께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도 집으로 돌아오는 공기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누군가를 만나, 알면 알수록 더 알 수 없음에 괴로웠다. 참 이상한 계절이다 여름은. 세상은 한껏 뜨거워져만 갔는데 그럴수록 내 마음은 저 반대편으로 향했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그래서 자꾸만 눈물이 차올라서. 나는 눈을 감았고 그 어둠 속에서 고독을 배워갔다. 그렇게 한낮의 열기 속에서도 서늘한 그림자를 품고 계절을 지나가고 있었다.


외로움은 정말이지 이상한 감정이다. 아무리 채워도 비어 있고, 가득해도 여전히 허전하다. 사람으로 채워도 그 사람이 떠나면 내가 사랑했던 온기까지 함께 빠져나가 그 빈자리는 이전보다 더 깊게 파인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나며, 끝없이 나를 채워줄 다른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외로움은 타인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활기찬 여름의 한복판에서, 언제부터인가 타인의 빛에 맞춰 내 그림자를 움직이고 있는 나를 보았다. 결핍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불러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 알려주고 있었다. 나로부터 더 멀어지지 말라고. 사라지지 말라고.


그래서 늘 슬픔과 함께 찾아온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전의 내가 누구였는지를 잊어버려서. 어쩌면 다시 되찾을 수 없을까 봐. 다시 되찾기 위해, 아니면 비슷한 그 무언가라도 만들기 위해 나를 찾는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창조적인 나를 만나게 된다. 느끼는 감각은 지독하리만치 아프다. 매 순간 포기하고 싶어진다. 대부분의 청춘이 겪는 그 막연한 아픔은 결국 새로운 자기 자신과 다시 마주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예술과 철학, 글과 사유. 모두 홀로 품은 알에서 부화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불행과 비극에 더 강렬하게 감정을 느끼고 열광하는 이유 또한 이것에 있다. 사실은 모두가 혼자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때만 들리는 소리가 있고, 보이는 빛이 있다. 타인과의 연결도 결국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비롯된다. 그래서 고독은 결핍이라기보다, 아직 닿지 않은 가능성의 형태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그 가능성을 외로움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예술이라 부른다. 단지 그 차이일 뿐이다. 뭐가 됐든 괜찮다. 아직 여름이다. 제아무리 달의 그림자를 길게 늘인다 하더라도 이 계절의 밤은 여전히 따듯하다.


청춘의 시작은 가지를 뻗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 속에서 매번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가지가 뻗어 날수록 세상은 넓어지고 관계의 무게는 점점 깊어진다. 그렇게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아무에게도 닿지 못한 채 흩어지고 만다. 함께 웃고 있어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건, 우리가 너무 일찍 군중 속의 고독에 길들여져 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가지를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며 살아간다. 나이가 들면 친구나 우정 같은 건 다 사라지는 거야. 너무 목매달지 마. 수도 없이 들은 말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 말은 경고라기보다 지나간 계절에 대한 미련이 덕지덕지 붙은 말들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들은 말이라도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실패도 마찬가지다. 피하려 애쓰기보다 그것을 담담히 통과하는 쪽이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자라는 나무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향한 마음은 깊어지기 마련이고, 다만 아직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자꾸 휘어질 뿐이다. 이렇듯 가지는 멀리 뻗을수록 부러지기 쉽고, 언젠가 스스로 베어내야 할 때도 찾아온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빛을 향해 손을 뻗는다. 인연 앞에서 계산하지 않고, 다가오는 마음에 온기를 더하며 기대를 품는다. 어쩌면 그것이 청춘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더 크게 아파하고, 진하게 사랑하고, 눈부시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준 것만큼 돌아오지 않아도 좋고, 내가 받은 상처만큼 그들이 아파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린 모두 자라는 중이니까. 수많은 가지를 뻗어 타인에게 닿고, 그들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부러지고, 스스로 베어버리고. 그러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면, 홀로 서는 법을 배우는 나무가 될 것이다.


결국 나는, 나만이 만들어갈 수 있다. 사람은 변하고, 시대도 변하고, 나 또한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다. 모양은 달라져도 본질은 함께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버텨야 하는 것도, 견뎌내야 할 무언가도 아니다. 그저 인정하고 함께 살아내야 할 삶의 동반자이다. 방향은 각자 다르지만 결국 모든 길은 한 곳으로 모인다. 내가 되는 것. 사람도, 사랑도, 형태도, 꿈도. 끝에 가면 모두 흐트러진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변하는 것들 속에서 낙원을 찾지만, 그 낙원은 손에 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사람은 가장 아름답고도 위험한 낙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덧없음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진하게 느끼는 것도 바로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완성시키지는 않아도 내 안의 나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 비어 있어도 괜찮다. 무엇을 담던 공허는 남는다. 그러나 그 공허는 결핍이 아니라 여백이다. 빈 그릇은 빈 그릇의 형태로 이미 쓰임을 다했다. 때로는 그 안에 사랑을, 때로는 슬픔을, 때로는 꿈을 담고 순간의 나를 살아가면 된다. 삶은 끊임없이 채워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사랑하는 것을 담고, 다시 비우고, 또 채우고, 끝에 가서는 모든 걸 다 비워두고 다시 빈 그릇의 형태로 돌아가는 일이다. 긴 꿈도 언젠가 깨기 마련이다. 그 꿈속에서 내가 무엇을 가졌든, 무엇을 이뤘든 깨고 나면 그냥 다시 나만이 남는다. 어차피 꿈이라면 이 외로움 또한 꿈의 일부일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일부일 것이고. 그래서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답이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도 결국 살아가는 것뿐이다. 어느 순간의 어떤 내가 열쇠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문을 열지 못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이미 되었고, 여전히 되어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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