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의미
여름의 끝자락에 다 닿을 때 즈음, 이유를 붙일 수 없는 불안이 하나 찾아온다. 다시는 이 여름을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공기는 서서히 식어만 가는데 그럴수록 뜨거웠던 계절의 기억만 더 또렷해진다. 손에 남아 있는 열기로 이미 지나간 것들을 붙잡는다. 아직 이 여름이 내게 유효한지 자꾸만 확인받고 싶어져 지난날을 회상하며, 동시에 올 수 없는 미래를 회상한다. 끝나겠지만, 끝났겠지만, 그래도 아직.
나는 오늘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밤이 되면 하지 못한 것들이 자꾸 안에 남아 스스로를 괴롭힌다. 과거와 미래는 숨 쉬듯이 살면서 정작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예전의 불안은 특별한 사건에서만 찾아오는 것이었다. 시험 전날이라던가,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순간이라던가, 뭐 그런 긴장감 넘치는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불안은 상황을 지나면 그렇게 불안해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가볍게 나를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정작 미치게 하는 건 이러한 것들이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 겉으로 보면 크게 잘못된 삶은 아닌데 이상하게 숨이 막히는 날들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않을수록 심장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잘 지내고 있음에도 내가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받으려 하고, 동시에 잘못 살고 있다는 의심도 따라붙는다. 이러다 뒤쳐질까 봐? 아니, 이미 뒤처진 것 같아서. 웃긴 건 그러다 또 한 순간에 다 잊어버린 사람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무엇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한 채 마음만 공중에 떠 있고, 그 상태로 또다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고질병이다. 그저 개인의 성격 문제로 치부되기엔 지나치게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나는 고질병.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 불안을 들키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화려한 포장지로 자신을 감싼다. 불빛이 빼곡한 도시의 밤은 지독하리만치 아름답고, 공허하다. 우리는 너무 이른 시기부터 무엇이 더 밝게 빛나고, 더 아름다운 것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늘 한정적이다. 직업, 돈, 권력. 서로가 서로를 저울질하며 나를 제외한 남은 전부 자신과의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문제는 그것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도 반복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슬프게도, 이제는 사회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가 감시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불안해야 유지가 된다. 계속 부족하다고 느껴야 하고, 남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져야 하고, 더 빨리, 더 먼저 새로운 것을 가져야 한다. 늦게 가져도 가질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내가 마지막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아직 다 가지지 못한 나 자신은 늘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것들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사실상 개인을 성장시키기보다는 소모시킨다. 그래서 이 불안은 늘 깔려 있는 상태로 동력이 아니라 배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야만 사람이 더 오래 일하고,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돈을 쓰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욕심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미 공기처럼 퍼져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욕심을 부리면서도 욕심을 부리는 게 마치 죄인 것 마냥 서로가 서로를 손가락질한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 인간의 욕심이 끝나지 않도록 만든 것일 뿐이다.
사실 현실에 만족하고 살면 불안할 이유는 줄어든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을 느낀다면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재촉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자꾸만 더 많은 것을 가져야 만족하도록, 그래서 더 많은 욕심을 부리도록 한다는 것에 있다. 만족한 사람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사람, 발전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게 나쁜 것이 아닌데도 게으르고 한심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사람은 시장에서 쓸모를 잃기 때문이다. 더 좋은 집, 더 나은 몸, 더 높은 자리 같은 목표들이 희미해지면, 절실하지 않게 된다. 너는 너, 나는 나. 상대와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개인에게는 더없이 평온한 상태이겠지만 시장에는 위협적이다. 그래서 사회는 교묘하게 우리가 만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삶. 그러다 지쳐 무기력해지는 삶. 갓생과 번아웃의 반복. 과하거나, 어쩌면 늘 모자란 상태.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좀처럼 온전한 중간에 머무르지 못한다. 모든 타이밍은 언제나 외부에서 정해진다. 이렇게만 하시면 월에 1000만 원을 법니다. 잠시 멈추어 쉬셔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기 계발도, 쉼도, 모두 외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언가 따르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선택이 맞는지 틀린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해 더 명확한 지침을 원하고, 보다 단순한 해답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자신을 스스로 챙긴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그것이 제일 힘들기 때문에 자꾸만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거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따르면 내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 혼자 남겨질까 두렵고, 이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만 같아 두렵다. 불안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사실상 대부분은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이쯤에 이르면 더는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 정도로 애쓰고 있는데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는가. 질문만 떠올리고 덮어두지는 말아야 한다. 생각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이민다면 이 악순환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리를 끊는 법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불안을 제거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나의 불안을 문제 삼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불안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과하게 붙잡고 있는지, 무엇을 놓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결국 가지지 못해 불안한 것이 아니다. 잃을까 봐 자꾸만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 조금 어긋났다고 해서 금방 다시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어제의 나를 지워야만 오늘이 성립되는 방식으로는 아무리 오래 버텨도 삶이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결국 의미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시대마다 의미는 다르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마다 가진 의미도 다 다르다. 삶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도 전부 다 다른 대답이 돌아오는 이유 역시, 그 질문이 단 하나의 정답을 향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정되지 않은 것들은 늘 손에서 미끄러진다. 붙잡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다시 보면 이미 다른 자리에 가 있고, 분명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도 내일이면 낯선 표정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마주치는 장면들이 모두 같은 의미로 남지 않는 이유는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정되지 않은 실체는 언제나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은 곧 자유고, 자유는 곧 선택이다. 기준이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매 순간 선택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 선택이 개입하는 순간 마음은 쉽게 편해지지 않는다.
내가 삶에 어떤 의미를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현실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이 변화 가능성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됨과 동시에 마음을 끊임없이 흔든다. 때문에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없애야 할 대상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멋대로 내 삶의 판단을 대신하도록 둘 수는 없다.
이 삶이 가벼워지지 않는 이유는 아직 놓지 못한 의미가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를 두고, 다시 그 의미를 버리고, 또다시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나에게 있어 무엇이 내게로 와 의미를 갖는지 찾는 일만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삶이 가벼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쉽게 포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은 결국 의미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많은 의미를 가질 필요도 없다. 몇 개의 의미를 가졌느냐보다, 무엇을 의미로 삼고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삶은 내가 지은 의미만큼 무거워지지만, 그 무게는 짐이 아닌 사랑을 품을 수 있게 된 만큼의 깊이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