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진행한 과제를 드라이브에 업로드하고 강의 시간에는 교수님께 과제의 피드백을 받는다. 늘 떠먹임(?)을 받던 학부 강의만 겪다가 대학원에서 처음 마주한 자기 주도적 학습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매 수업마다 동기들 앞에서 스크린에 띄워지는 내 과제물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동기들에 비하면 너무나 턱없이 부족한 과제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원 과정은 조형예술대학으로 과제의 대부분이 작품의 형태로 제출을 해야 한다. 재학생의 7할은 학부에서 예술 분야를 전공한 전공자고 그 외 나를 포함한 3할 정도가 예술 외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온 비전공자다. 꾸준히 기회가 되어 카툰을 그려왔고 입학할 때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긴 했지만 그림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도 없었고 전공자들 앞에서 내 그림은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1학기 전체가 비대면 강의로 진행되었다. 보통 비대면 강의는 zoom이라는 화상 강의로 진행이 되었는데 과제물로 제출한 작품 하나하나를 띄워놓은 상태로 피드백을 해주셨다. 컴퓨터 모니터에 익숙한 내 그림이 올라올 때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상기되곤 했다. 사실 비전공자다 보니 동기들보다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러한 실력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좁히기 위해선 남들보다 더 큰 노력과 시간 투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어떤가. 오후 6시까지는 그나마 내 시간이 있지만, 오후 6시 이후가 되면 나의 시간은 없어지고 엄마로서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엄마’라는 단어를 수백 번은 외쳤다. 주말은 또 어떤지. 남들에게는 황금 같은 주말이지만 나에게는 온전히 아이에게 투자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잠들면 그제야 급하게 밤을 새워 과제를 마무리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남들보다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남들보다 더 시간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부족한 시간 투자는 과제에 온전히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첫 학기에 교수님께서 웃으시면서 ‘생각보다 열심히 안 하는 것 같네.’라며 농담처럼 던지신 말은 내 마음 한편에 남았다.
사실 아이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실제로도 열심히 하지 않던 것을 고스란히 들킨 기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핑계이자 방패였다. 나의 결과물은 부족함 투성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학업을 병행한다는 이유로 큰 질책 없이 넘어가곤 했고 오히려 주변에서는 대단하다는 호평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언제까지 아이를 핑계로 내 부족한 노력을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찌 됐든 간에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필요로 하는 졸업 작품이 완성되어야 하고 졸업이 걸려 있는 이상 지금의 일반 과제처럼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더는 아이를 나의 방패로 삼지 않기로 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짧은 시간에 조금 더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보려 한다. 아이를 방패로 삼기에는 내가 온전히 아이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학교생활을 핑계로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아이를 핑계로 학생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이렇게 비겁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물론 아직도 나는 아이를 핑계 삼는 게 익숙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아이의 핑계를 무수히 많이 댔으니까. 하지만 조금씩 바꿔보려 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아이에게 충실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만의 시간에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말이다. 졸업할 즈음에는 육아를 병행한 것에 대한 고생과 노고를 인정받는 것이 아닌 내 실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