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아침 7시 15분. 인공적인 소음과 진동이 뺨을 톡톡 친다. 7시간 전부터 찾아올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던 그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첫 번째 환복은 이때 이뤄진다. 근로 계약을 완수하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적합한 복장이 필요하다. 우선 중국에서 만들어진 흰색 와이셔츠에 몸을 구겨 넣고, 태풍에도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는 묵직한 검은색의 망토를 어깨에 두른다. 문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망토로 짓눌러진 어깨는 방파제만큼이나 볼록 솟아있다.
약속한 시간,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민수의 앞에 위치한 모니터는 컴퓨터 앞에 앉은 모습을 희미한 잔상으로 던져준다. 민수는 그것을 보고 흡사 손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같다고 생각한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분명하다. 손은 키보드에, 발 대신 눈이 모니터에 고정돼있다는 것과, 예수가 지닌 숭고함과 아가페는 나태함으로 바뀌어져 있다는 것.
전자파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분과 정신적 에너지를 앗아간다. 눈은 뻑뻑해지고, 입은 바싹 타들어간다. 열정도 같이 사그라진다. 그와 동시에 어깨는 더욱 내려앉는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무색무취의 먼지가 어깨를 차지하고 있다. 본래의 소용을 며칠 전에 다한 커피 원두 찌꺼기처럼 퇴적한 그 먼지는 코를 끊임없이 간지럽힌다.
바로 이때, 두 번째 환복을 한다. 아침에 비하면 간단하다. 검은색 망토를 한 꺼풀 벗겨내는 것이 전부이다. 그 한 겹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의자 옆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후드득. 먼지는 책상과 의자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낙하한다. 보이지 않는 먼지조차 중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민수는 순간적으로 실 웃음을 터트린다.
약 1시간의 점심시간 동안에 열심히 지방과, 카페인과, 당분과 염분을 몸에 과다 충전하고 혈압 수치를 상승시킨다. 유일하게 먼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필요 이상의 편중된 영양소의 침공으로 눈꺼풀, 뱃살, 두뇌는 한 없이 느려진다.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로 가는 중, 바람 한 가닥과 함께 먼지가 살며시 귓가를 스치며 속삭인다. "내가 없어도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구나? 좀 있다가 보자고."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부터 퇴근 전까지, 가진 모든 자원을 투입하여 건조한 행위를 수없이 반복한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희미 해질 때쯤, 모니터에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노란색 팝업 메시지가 반갑게 웃는다.
퇴근 직전의 먼지의 양은 오전에 떨쳐버린 그것의 약 2배 이상이다. 양쪽 어깨에는 두 개의 거대한 산이 만들어졌고, 귓구멍을 가려 세상의 소음에 무뎌지게 만든다. 하루 동안 생명과 등가교환한 결과물이 먼지라니, 순간적인 어지러움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환복 할 수 있는 시간이 간절하다. 이번 환복은 신성한 의식일 것이다. 민수는 지긋이 눈을 감는다. 그리고 나그참파 몇 스틱을 피우고, 중국제 여래 불상이 있는 자신만의 동굴에서 이뤄질 그 환복을 상상한다. 이를 통해 계약, 의무, 강요 그리고 먼지라는 개념을 모르던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갈 자신까지도. 하지만 뒤로 들리는 텁텁한 목소리에 다시금 현실을 마주한다.
"양 대리, 잠깐 내일 보고할 자료 좀 논의하자고. 저녁도 먹고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