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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촌네글다방 Feb 06. 2024

빈 종이

우리의 하루는 알 수 없는 글자로 빼곡한 메모지 같다.

포스트잇 중간 크기에 갱지처럼 건조한 회색으로 덮인 메모지에는

현재와 미래의 내가 처리해야 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생각과 행동은 메모지와 시간이란 사슬에 묶인다.

그것들을 처리하며 시곗바늘을 앞으로 보내며 맞이하는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퇴근길에서야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았으나

어느새 태양은 정수리 한 뼘 정도의 높이에서 나를 지긋이 비추며 묻는다.

너는 오늘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고.

영혼의 한편을 응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봤냐고.


아, 태양 이시어. 물어봐주심에 감사합니다.

첫 번째로, 한 권의 책과 익숙해지고 싶은 타인이 필요합니다.

영혼을 따뜻하게 할 문장들을 음미하고 자신의 인생에 이를 녹여,

어떤 목적의식 없이 이를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흰 종이 한 장과 연필을 원합니다.

형태와 방식의 강요 없이 내 생각을 기록할 수 있는 종이가 필요합니다.

그 종이는 지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옥수수 수프이자 마르지 않는 샘일 것이며,

실재하는 타인과 서로 연대하는 아고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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