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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촌네글다방 Mar 11. 2024

우리가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이유

감상문

0. 인트로

 '마이너 필링스'의 정의는 '자신이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한 감정'이다. 저자는 이 사례로 미국에서 심리상담사에게 받은 부적절한 대우, 독일인에겐 친절하지만 '독일어를 하는 아시아계 여성'인 자신에겐 무뚝뚝했던 독일의 가게 주인을 언급하며, 이를 들은 저자의 주변인들은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 라는 문구로 그녀의 부정적 감정을 의미 없는 흥분, 일상적인 '사소한 감정'으로 치환시켜 버리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사소한 존재들에게, 유전적 특징에 기인한 인종, 성적 차별에 반대하여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동시에 연합하여 범지구적인 평등을 이룩하자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1. 다큐멘터리로 다가오는 감정들

  이 책을 읽고 난 후, HBO 드라마 '체르노빌'의 마지막 회를 마무리한 후 느꼈던 감정이 솟아났다.

  1986년 4월 발생한 인류 최악의 대참사인 체르노빌 원전 사건이 발생한 당시의 상황과, 이를 마주한 당사자들의 반응을 사실적이면서도 건조하게 그려낸 작품이었고, 이를 통해 비극이 갖는 잔인함이 내 심장까지 도달한 느낌이었다. 작품을 보는 내내 누군가에게는 과거이자 상처로 남은 현실일 비극적 실화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즐긴다는 것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고, 이를 양분 삼아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을 볼 때 지레 겁이 나는 버릇이 생겼다.


  저자는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미국에서 겪은 인종차별 경험과 선대가 겪은 차별의 역사를 한데 묶는다. 그 결과물은 용암처럼 뜨겁지만 동시에 얼음물처럼 차분하고, 가시처럼 날카롭지만 꽃잎만큼 섬세하다. 그렇기에 이 책의 문장은 하나의 주사기가 되어, 그녀가 성토하는 '소수'가 겪은 고통의 역사와 '비주류의 연합'을 내포한 용액을 내 혈관에 깊숙이 투입하였다. 이는 '체르노빌'에서 느낀 죄책감을 다시금 불러왔다. 동시에,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에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2. '마이너'와 마주친 경험 1편 @시카고

  자연스레 내가 '마이너 필링스'를 경험한 사례를 생각하기 전에 한국사회에서의 내가 갖는 위치를 분석해봤다. 나는 여성에 비해 신체적 우위를 타고난 남성이며, 고입 수능과 비슷한 연합고사를 통과하여 인문고에 입학했고, 이를 통해 어른들에게서 실업고 학생에 비해 더 나은 사회적 평가를 얻어냈다. 그리고 4년제 수도권 대학을 졸업하여 입시시장에서 고졸 및 전문대 졸업생 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 지방에 비해 사회적, 물적 인프라가 충분한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가 '소수'로 분류된 경험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비주류'인 존재들이 항상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책의 마무리 문장에서 눈을 떼는 순간,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며 겪은 두 가지 경험이 불현듯 떠올랐다.


  첫 번째 경험의 배경은 2010년 5월의 시카고이다. 3명의 한국인과 함께 아이티 대지진의 피해복구를 돕기 위한 자원봉사를 기획하고 있었던 시기였고, 밥 먹을 돈도 부족했기 때문에 여행객에게 자신의 집을 무료로 내주는 호스트를 찾을 수 있는 '카우치서핑'이란 웹사이트를 통해 숙박을 해결했다. 시카고에서 만난 호스트는 남성 재미교포였다. 외모와 혈통은 전형적인 한국인이지만, 평생을 미국 시카고에서 지낸 시카고 토박이이자 평범한 회사원 이었다. 살짝 반지하에 위치한 그의 집은 손님 4명을 들여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안락했으며, 그의 인상과 웃음은 참으로 따뜻했다.

  우리는 짐짓 그를 부러워했다. 그의 겉모습만 보고 '미국이란 땅에서 기회를 보장받고, 멀쩡한 직업도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후속작'이라는 라벨을 그의 가슴에 붙여놓고 말이다.

  어느 날 그가 우리에게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하며 초밥집을 방문했고, 그는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이 마주치는 유리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푸념했다.   

"기본적으로 백인은 다른 인종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건들지 않는 한 친절하게 대하지.
하지만 그들이 다른 인종에게 허락한 사회적 위치를 우리가 넘고자 한다면,
백인이 만들어 놓은 유리천장이 우릴 저지하지.
그것은 아주 교묘한 방식 설치되어서 몇 번이고 부딪힌 후에야 그 존재와 단단함을 알 수 있어."

  이것이 서류상으로는 엄연한 미국인인 그가 조국에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유전적 형질로 그는 한국인이었지만 그는 단 한마디의 한국어도 하지 못했고, 자신이 존재한 적이 없었던 한국에 가고 싶은 의향도 없었다. 그의 집을 떠나면서, "저 사람에게 소속감이란 존재할까?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어딜까?"라는 궁금증이 들었으나 물어볼 수는 없었다.  

   

3. 흑인은 어떻게 불러야할까? @미시간

  두 번째 사례의 배경은 미시간이었고, 내가 인종차별의 잠재적 행위자로서 해당 주제에 접근한 순간이었다. 당시에 봉사활동 훈련을 받던 NGO단체에는 라티노, 백인, 아시아인, 미국인, 유럽인에 이르는 다양한 인종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흑인은 없었다.


  야외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던 어느 날, 테이블에 모인 이들은 "흑인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를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고 "당연히 N-word는 안되고, Black은 괜찮을까? 누군가는 African-American이라고 불러야 한다던데."와 같은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을 한 이들은 없었다. 그 이후로는 흑인과 대화할 시에는, 도대체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상대를 직접 지칭하는 상황은 피했다.

  

4. 우리에겐 고유한 이름이 있다

  대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 업무를 통해 외국인을 접하며 깨우친 깨달음은 '사람은 이름으로 부르면 된다.'라는 정말 단순한 문장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윤'이 아니라 '두 명의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토종 한국계 아시아인'으로 소개한다면 나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그리고 주변인들이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윤'의 선택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유전적 성질로 인해 결과물이라고 평가한다면, 나는 부정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느껴질 것이다.


  한 인간을 피부색이나 출생지가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 이유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한국의 문화가 아직 나의 감각기관 전반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을 낳은 후로 '누구의 엄마, 아빠'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개인을 대표하는 이름 대신에, 가족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을 얼굴에 이식한 성형수술을 받은 것처럼.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인 '우리는 이 나라에 늘 있었던 존재다.'에서의 '우리'는, 고통과 차별을 받아온 아시아계 여성이다. 하지만 나는 상기한 두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내가 차별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모든 '비주류'이자, 어느 순간 상대적인 주류에게 배척당할 수 있는 나 자신으로 다가왔다. 이 문장은 나의 감각기관에서 끝없이 부유할 것이다. 내가 마주하는 존재를 외적인 특징을 초월하여 인지할 수 있는 시야를 갖추는 그 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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