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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Oct 14. 2021

과일 장수의 적정 타율

2021.10.14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다. 먼 훗날 의미 있는 자료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SNS를 통해서 일기처럼 썼던 과일과 농업 그리고 농산물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생각했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이미 썼던 내용이기에 실제로 글을 썼던 날짜를 별도로 기록한다. (글의 발행일과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음)




야구에서 3할 타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10번 타석에 들어서서 안타 3개만 때려내도 훌륭한 선수로 인정을 받습니다. 4할이 되면 그때부터는 인간계가 아닌 신계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죠.


과일장수의 적정 타율은 얼마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 고민에서 해방되었던 2년 전에 브런치에 '10할은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과일장수를 시작하고 오랫동안 10할 타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삶이 참 전쟁 같았습니다. 계속 10할을 치다가 어느 날 9할을 쳤는데 비난을 보내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이렇게 살다가는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아 조금 다른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의 저의 목표는 7할입니다. 10할은 하늘이 내려주는 숫자라는 것을 지금은 잘 압니다.


3년 동안 회원들에게 최고의 맛이라고 평가를 받은 농민의 과일이 가뭄, 장마, 태풍 등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맛이 떨어진 경우가 어쩔 수 없이 발생을 합니다. 그 순간 저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욕을 먹을 것을 감수하며 그 농민의 과일을 팔 것인지? 아니면 그해 그나마 날씨로 인한 피해를 덜 받은 농민의 과일을 찾아 나서야 할지 말입니다.


지금의 공씨아저씨네는 당연히 전자의 방법을 택하고 있고, 그 과정 또한 함께 할 수 있는 분들만 회원으로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과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새로 생기기도 하고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수는 컨디션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제가 안고 가야 할 동료이고 파트너입니다. 저에게는 농민들이 그렇습니다. 때로는 좋은 경기를 못 보여줄 수도 있죠. 날씨로 인해 과일맛이 예년만 못할 때가 있는 것처럼요. 그럴 때마다 선수를(농부)를 교체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이 선택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없기는 한데 간혹 '작년보다 맛이 없는 것 같아요' , '기대하고 주문했는데 실망스럽네요'와 같은 피드백을 보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죄송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 스스로를 대역 죄인으로 규정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사건은 종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거든요.


종종 회원가입 시 회원가입의 이유를 '실패 없이 과일을 먹고 싶어서'라고 남기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최근 들어 지인 소개로 회원가입을 해주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는데 XX는 어디가 맛있더라라는 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10할을 기대하고 오시는 분들이죠.


제가 종종 이런 이야기를 이곳에 글로 남기는 이유는 저희를 이용하는 목적이 오직 과일 구매에 있어 10할의 타율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뿐인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10할 과일가게라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20년째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시는 제가 존경하는 대표님이 예전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기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손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반 이상이 좋아라 하면 간다."


저는 이제 더 이상 10할을 꿈꾸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일 가게는 계속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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