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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Dec 06. 2021

녀석의 첫 출사

2021.12.6

foli:n <팀 유퀴즈 : 지금의 유퀴즈를 만든 사람들> 편에서 유퀴즈 메인 연출을 맡은 김민석 피디가 시정자로서 꼽는 레전드 편을 묻는 질문에 101화에 출연하셨던 김범석 종양 내과 의사편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보는 내내 계속 눈시울이 붉어지더라고요. 어린아이들을 두고 세상과 이별하는 환자들의 이야기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정 이입을 너무 심하게 해서...


마음 아픈 일인데 젊은 나이에 뜻하지 않게 세상과 이별하는 분들을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목도합니다. 조금 이른 생각이긴 한데 코로나 시대를 2년 동안 겪으며 죽음에 대해서 조금 딥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조금 어이없게 들리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40대 중반인 저는 사실 더 이상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없습니다. 


세상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고요 30대 중반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 이후에는 안분지족 하는 삶을 살다 보니 당장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면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저는 제 삶에 야욕도 미련도 후회도 없거든요. 


아이들에게 아빠와 함께한 좋은 추억 하나 더 만들어 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스스로 믿고 15년을 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작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벤트를 만들곤 합니다. 당연한 과정이긴 한데 조금씩 아빠의 품을 떠나려고 하는 16세 첫째와는 달리 13세 둘째는 아직 아빠를 많이 고파합니다. 


집에 오면 '아빠 아빠 그거 아세요?'로 입을 여는데 가끔은 맞장구를 쳐주거나 대답하기 너무 힘들어서 '질문은 하루에 10개씩만 하면 안 될까? 질문 쿠폰을 줘야겠어~' 하는데 그러고 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방으로 들어가는 쓸쓸한 뒷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파서 방으로 뒤따라 들어가서 간질간질 간지럼을 태우며 용서를 구하기도 합니다. 


13세 둘째는 동물식물 세밀화 도감을 하루에 최소 1시간 이상씩 보는 것 같은데 어제는 아빠 꾀꼬리 보신 적 있으세요? 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못 본 것 같다고 했더니 꾀꼬리는 나무 아주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살기 때문에 잘 못 보셨을 거예요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서 조용필 아저씨가 꾀꼬리를 못 찾아서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쳤구나 해줬더니 예상대로 집안이 얼어붙었죠.   


어제는 카메라를 들고 13세 둘째와 함께 새를 찍으러 돌아다녔습니다. 카메라는 녀석이 잡았고 저는 그냥 뒤를 따라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유퀴즈 89화 출연했던 정세랑 작가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본인을 '탐조인'이라고 소개할 만큼 새를 참 좋아하는 분으로 기억합니다. 유재석 씨를 닮은 새로 칭했던 물까치는 우리 13세 둘째가 제일 좋아하는 새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떼로 몰려다니는 물까치를 원 없이 보며 너무 좋아서 괴성을 지르기도 했죠. 


자연을 아끼고 생명을 중히 여기는 13세 둘째의 모습에 아빠는 흐뭇합니다.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카메라를 처음 잡아보는 지라 서툴긴 하지만 녀석이 촬영한 물까치 3인방을 공개합니다. 400미리 망원렌즈 사달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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