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9
서울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흐린 날씨지만 저는 오늘도 사과를 찍습니다. 월요일에 출발한 녀석이 어제 도착했거든요.
매주 한 박스씩 받아서 매일 먹는 같은 사과지만 사과가 오면 한알 한 알 살핍니다. 일반인들 눈에는 다 똑같은 호랑이로 보이지만 사육사들 눈에는 모두 다 다르게 보인다고 하죠? 제 눈에도 사과 한 알 한알이 다 다르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보이죠.
꾸미지 않은 과일 본연의 모습을 담기 위해 이렇게 찍습니다. 흔히 누끼라고 하죠? (누끼는 일본어이고, 정식 명칭은 cut-out입니다.) 거칠게 자란 녀석들한테 특히 더 애정을 쏟는 저만의 취향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전 대학교 다닐 때 사진을 공부했어요. 직업 사진가를 생각했던 시절도 잠시 있었고 retoucher과 printmaker로 필드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과일 장수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어느 순간 과일을 팔기 위한 사진만 찍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 뒤로는 저만의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과일 한 알 한알을 기록으로 남기는 거죠. 이 사진이 저희 사이트 대문을 장식하기도 합니다. 물론 한 박스에 들어있는 모든 녀석의 모습을 다 담지는 못하지만 과일 한 품종당 수십 컷, 많게는 백 컷이 넘는 과일 사진들이 저의 외장하드에 저장되어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전시 혹은 과일 도감을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에 차근차근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어제 도착한 사과는 유난히 맛이 좋네요. 후지 사과는 저장고에서 보관하면서 조금씩 당이 올라갑니다. 제가 사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도'가 아닌 '경도'입니다. 아삭아삭함을 잃은 사과는 제가 안 먹거든요. 후지 같은 경우는 흔히 꿀이 박힌 사과를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조금 늦게 수확하시는 농가들이 있는데요. 그런 사과들은 설 즈음 되면 경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장성이 약하거든요.
이재식 농민의 동북 7호는 아직도 아삭아삭 사각사각 88 합니다.
사진은 다 찍었으니 저는 이제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