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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Oct 17. 2022

딱새 가문 반상회 날

2022.10.15

자영업자가 된 이후에 가장 좋은 건 만원 지하철 피해서 출근할 수 있다는 거.  두 번째로 좋은 건 12-1시 점심시간 피해서 여유롭게 밥 먹을 수 있다는 거. 세 번째로 좋은 건 평일 시간 활용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입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마음을 딱 내려놓고 나니 삶에 여유와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며칠 전 출근할 때 왠지 쌍안경을 가지고 나가고 싶어 졌습니다. 출근 도장만 찍고 바로 뒷산으로 향했죠. 고요한 아침의 숲 속. 소리 없이 조용히 움직이는 녀석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고개는 계속 하늘만 보고 있어야 해서 목이 아프지만 휴대폰만 보는 삶보다는 낫습니다. 


탐조인 아빠(나)


맨눈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새들이 많습니다. 특히 작은 솔새류들은 작고 움직임이 빠르며 너무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쌍안경으로 봐도 정확히 동정이 어렵죠. 솔새에 입문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도감을 봐도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쌍안경 덕분인지 2종 종추를 했습니다. 탐조인이 있었다면 무슨 새인지 바로 알았겠지만 머릿속으로만 기억하고 집에 가서 탐조인에게 새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탐조인은 노랑허리솔새랑 붉은가슴흰꼬리딱새로 동정을 했습니다. 붉은가슴흰꼬리딱새는 네이처링에 올해 올라온 관측 정보가 1건밖에 없을 정도로 정말 보기 힘든 나그네새인데 아무래도 제가 오늘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박새도 보았습니다. 사무실 뒷산에서 동박새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물쇠딱따구리도 보았습니다. 얼핏 보고 당연히 쇠딱따구리인 줄 알았는데 탐조인이 영상을 보더니 아물 쇠딱따구리라고… 도감 보면서 차이점을 알려주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딱따구리'로 표기하는데 도감에는 '딱다구리'로 표기가 되어서 어떤 게 맞는지 궁금해하던 참에 탐조 스승님께서 조류학계에서는 '-더구리'라는 예전 표기를 살려 '딱다구리'라는 명칭을 쓴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다음날에도 붉은가슴흰꼬리딱새로 보이는 녀석을 동일한 장소에서 관측을 했고 드디어 오늘 주말을 맞이하여 탐조인께서 직접 나섰습니다. 새들이 주로 활동하는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9시 전에 도착해서 슬슬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3주 연속으로 토요일마다 탐조를 하고 있는데요. 사실 제가 주말에 밖으로 잘 안 나가는 성향의 사람이라 몸이 몹시 고달프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우리 가족들이 기억하는 나와의 마지막 추억이 오늘 이 순간이 될 것이기에 조금 귀찮고 힘들어도 최선을 다하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준 것은 노랑눈썹솔새입니다. 쪼메난 녀석들이 어찌나 호들갑스럽게 빨리 움직이는지 제대로 관측하기 너무 어려운 녀석들입니다. 









무엇보다 탐조인을 기쁘게 한 것은 노랑딱새였습니다. 최근 가장 보고 싶어 하던 새였는데 오늘 노랑딱새를 정말 신나게 보았답니다. 붉은가슴흰꼬리닥새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노랑딱새를 본 것만으로 오늘은 집에 갈 때 웃으면서 갈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오늘은 유독 딱새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딱새 가문 반상회 하는 날인가 봅니다. 딱새가 정지 비행하는 모습은 오늘 처음 보았답니다. 




내려오는 길에 지난번에 동박새를 만났던 그곳에서 동박새를 딱 마주쳤지 몹니까.

동박새


보람찬 탐조를 마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탐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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