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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Oct 09. 2022

기러기가 왔어요

2022.10.8

한글날을 하루 앞둔 10월 8일. 여의도에서는 3년 만에 불꽃축제가 열리기도 했죠. 우리는 아침 일찍 파주로 향했습니다. 비둘기조롱이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계 철새의 날이기도 합니다. 


파주 장산전망대에서 본 임진강과 북의 모습



오늘 탐조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습니다. 평소 애정 하던 협력농가 농민의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울적한 마음으로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8월 말 즈음 한통의 문자가 왔습니다. '탐조로 이어진 인연'편에 등장하셨던 다큐멘터리 제작사 피디님으로부터요. 한국야생조류협회 회원이기도 하십니다. 


저희 집 탐조인과 함께 비둘기조롱이 탐조를 제안해주셨습니다. 사실 뒷산에 산책 겸 새 보러 가는 것이 탐조의 전부였던 저에게 진짜(?) 탐조를 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탐조 선생님과 함께하는 탐조라니! 저희 집 탐조인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동행을 약속했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사실 저 때만 해도 '비둘기조롱이'는 파주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새인 줄 알았습니다. ^^ )


오늘은 다양한 새들을 만났습니다. 약속 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도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기러기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요. 이제 한창 북에서 기러기들이 내려올 시기라고 합니다. 저희를 반겨준 첫 새는 기러기였습니다. 탐조인은 연신 우와 우와를 외치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쇠기러기


큰 기러기


씐난 탐조인



탐조인 선생님은 아내분과 함께 오셨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분도 생태 관련 연구기관에서 일하고 계시는 전문가셨습니다. 지금은 내성천에서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의 둥지를 관찰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흰목물떼새 어린 새들의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정말 너무너무 귀엽습니다. 


살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오늘이 저에게는 그런 날입니다. 


그동안 산책 겸 걸어 다니면서 했던 탐조와 달리 이번 탐조는 주로 차 안에서 이동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민한 새들이라 사람이 다가서면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새들에게 다가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이동을 하였습니다. 탐조는 주로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하시더군요. 


탐조 선생님 부부



주로 좁은 논길을 이리저리 다니는 일정이었습니다. 야생조류 필드가이드의 저자 박종길 선생님께서 알려주셨다는 비둘기조롱이 탐조 스폿 주변을 어슬렁 거렸습니다.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차들이 서너 대 더 보였습니다. 대부분 비둘기조롱이 보러 오신 분들일 거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시기상으로 지난주 즈음에 대부분 파주를 떠났을 거라고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쇠기러기, 큰 기러기


추수를 마친 논에는 쇠기러기와 큰 기러기가 수확 후 떨어진 알곡들을 먹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이제 벼 수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논으로 내려오는 기러기 떼들이 장관을 이룬다고 합니다.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 나무에 다양한 새들이 함께 평온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탐조 선생님이 가져오신 스팟팅 스코프(필드 스코프)를 꺼내 찬찬히 관찰을 합니다. 쇠백로, 왜가리, 해오라기(어린 새), 민물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가 사이좋게 한 곳에 오손도손 모여있습니다. 



도심 공원이나 인공 하천에서 보던 녀석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같은 새라도 서울에서 보는 새와는 광택부터가 다릅니다. 그리고 뭔가 더 자유로운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주변에서는 도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이곳 공릉천 주변의 새들의 서식지도 인간에게 잠식당할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비둘기조롱이보다 우리를 먼저 반긴 것은 황조롱이입니다. 황조롱이가 놀라지 않게 근처에 차를 숨기고 창문을 열었는데 제법 좋은 거리에서 잘 관측을 하였습니다. 맹금류는 작은 녀석이라도 맹금 특유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전깃줄에 앉아있을 때도 보통 새들은 등을 숙인 채로 평평하게 앉아있다고 하면 맹금류는 약간 서있는 느낌으로 꼿꼿하게 앉아있는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황조롱이


황조롱이


황조롱이 치고는 크기가 좀 작아서 혹시 비둘기조롱이가 아닐까 싶어 관측했는데 황조롱이로 동정을 했습니다. 






방울새


방울새는 텃새이긴 한데 서울에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여기에선 꽤 자주 보입니다. 울음소리도 여기저기서 자주 들렸고요. 차에서 창문을 열자 바로 제 옆에 있는 전깃줄에 앉아서 약 10초 동안 포즈를 취해주시곤 날아가셨습니다. 꼬리깃이 정말 아름다운 노란색을 띱니다. 


방울새



물수리



노랑할미새



중백로


탐조 선생님께서 탐조인에게 퀴즈를 내셨는데요. 저 새가 무엇인지 알겠냐고 말이죠? 도심 하천에서도 중대백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라 중대백로 같다고 대답했는데 자세히 보라고 하시더군요. 쌍안경으로 다시 보던 탐조인이 중백로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끄덕. 중백로는 처음입니다. 


저 새가 중백로인지 중대백로인지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정확하게 동정(同定)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어떻게 구별을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중대백로는 구각이 눈 뒤까지 도달하는 반면에 중백로는 구각이 눈 중앙부까지만 도달한다고 도감을 보여주시며 설명해주셨습니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제 문외한인 저도 구별할 수 있겠더라고요. 



청다리도요와 백로 2마리


탐조를 마무리하는 길에 비록 멀리서 이긴 하지만 청다리도요와 멸종위기종 1급인 저어새를 볼 수 있는 행운도 누렸습니다. 저어새는 저희집 탐조인이 마우스 패드 굿즈로 소장할 정도로 무척 좋아하는 새입니다. 


저어새




오늘 제일 많이 본 게 제비입니다. 저 어린 시절에 살던 1층 단독 주택에는 해마다 제비가 와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주택이 없어지고 아파트화가 됨에 따라서 서울에서 제비를 보지 못한 지가 3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제비가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제비가 이렇게 빠른 녀석이었군요. 물찬제비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저 높은 전깃줄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제외하고는 날아다니는 모습만 눈에 보입니다. 


제비


위에 있는 제비를 촬영 중인 탐조인과 선생님


제비
제비



사진에는 없지만 백할미새, 물떼새류 2마리, 물총새도 보았습니다. 물총새는 땅 위를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진한 그린색의 윤기 나는 털이 한눈에 물총새임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둘기조롱이는 보았냐고요? 네. 보긴 했습니다. 한 5초 정도? 비둘기조롱이가 앉은 전봇대를 발견하고 차를 대고 스코프를 차에 꺼내려고 하던 찰나에 다른 탐조 차량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는 바람에 그만 비둘기조롱이를 날려 보내고 말았답니다.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잠시라도 본 것에 만족합니다. 


이번 탐조를 하면서 탐조인이 지켜야 할 가이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새들은 날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먹이를 먹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놀라서 도망가느라고 날갯짓을 하게 되면 그만큼의 열량을 소비하기 때문에 또다시 먹이로 에너지를 보총 해줘야 합니다. 특히 철새들은 더더욱이요. 그래서 먹이를 먹기 위해 우리 땅을 찾아온 철새들을 사람들의 인기척으로 날리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탐조 선생님께서 선물해주신 새 배지들


탐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탐조인 동료분들과 새를 보실 때면 새로운 새를 보게되는 사람이 일행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리는 룰이 있다고 합니다.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일 겁니다. 어제 저희집 탐조인인 아이스크림 10개를 넘게 빚지고 왔습니다. 


새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새를 보는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 종이라도 더 많은 새를 보기 위한 욕심과 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한 욕망에만 사로잡히다 보면 탐조의 본질을 잊게 됩니다. 


많은 새를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원하던 새를 보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는 마음. 앞으로도 그 마음으로 오래도록 새를 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선물 받은 탐조 수첩에 탐조인이 그린 오늘 본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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