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던 시간의 목소리
그 골목의 끝에는
아직 공중전화가 남아 있었다.
누렇게 바랜 유리문,
긁힌 표면,
코인 투입구 아래 붙은
‘고장 신고 120’ 스티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옆을 그냥 지나쳤다.
어느 날,
한 소년이 그 앞에 멈춰 섰다.
등에는 학교 가방,
손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분필 자국.
소년은 잠시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동전도 넣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귀에 수화기를 대고,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누군가의 숨소리를 들으려는 듯,
혹은 오래된 시간의 끝을 듣는 듯.
잠시 후,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문을 닫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직 살아 있네.”
누군가가 들었다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겠지만,
그는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며칠 뒤,
공중전화는 철거되었다.
그 자리는 평범한 화단이 되었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었다.
“그날 그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전화로
자신에게 전화를 건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닿지 않는 곳에 말을 걸어본다.
그날의 소년처럼,
연결되지 않아도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기억의 전화선,
잊히지 않은 목소리의 흔적이다.
그 자리에선
이제 초록 잎만 흔들린다.
하지만 바람이 불 때면,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아직 그 전화기 너머에 남아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