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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빛아래 Jun 28. 2022

자존감

결국엔 또 사랑,

 그것은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아주 깊은 곳에 자리매김하고 있어 단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것의 존재에 대해서 눈치채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이물감 때문이 아니었을까싶다. 그것의 위치는 파랑과 보라색 중간인 듯하나, 그 속을 알 수 없어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었던 곳에 숨겨져있었다. 때문에 나는 형태나 존재를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그것이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건 내 위에 떠다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소한 한 모금. 비록 한 모금이었지만, 그래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에는 수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에는 낮아지는 수심을 이기지 못하고 형태를 드러냈다.


 온전히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처음 나의 일부를 마셔버린 사람은 내 발가락을 사랑했다. 그 사람은 발등에 큰 화상이 있었는데, 그런 연유로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발가락을 드러낸 사람들조차 싫어했다. 그런 사람이 365일 중 200일을 샌들을 신고다니는 나를 사랑해준 것은 어쩌면 한 모금이 아닌 한 홉 이상을 가져갔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또 꽤나 많은 양을 마셔준 사람은 나보다 미리 숫자를 삼켰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시작’이라는 단어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항상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툭치면 깨지고 텅 비어있던 공갈빵 같은 말들과는 다르게, 꾹꾹 눌러담은 밥그릇 같은 말을 담아준 사람. 그 사람은 누군가가 다시 수면 위를 높이려고 할 때쯤에 조용히 나타나 올라간 수면만큼의 양을 비워주었다. 


 아직은 바닥이 축축할정도의 액체가 남아있지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빨아들여도 좋을 것 같은 그 사람은 예민한 청각을 가졌다. 내 목소리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그 사람. 높은 온도로 뜨거워졌을 때 설탕처럼 단숨에 녹아버리고, 한없이 떨어지는 온도에 차가워졌을 때도 함께 얼어주었다. 어쩌면 예측할 수 없는 일기(日氣)에 다시 그것이 잠겨버린다해도 마음껏 마셔줄 사람이 아닐까.


 그랬다. 볼 수 없던 곳에 있던 그것은 나를 흡입한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그 사람들의 수만큼, 마셔버린 물의 양만큼, 스치고 닦아내어져 눈부실 수밖에 없게되었다. 이제는 감추고싶어도 상습적으로 들여다볼 수 밖에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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