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붉은빛아래 Jun 28. 2022

<조블랙의 사랑 Meet Joe black, 1998>

사랑 영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 영화

‘빈티지’라는 말은 포도주의 라벨에 상표와 포도의 생산 연도를 명기하는 것을 뜻한다. 오래 될수록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의류나 상품들 앞에 많이 쓰이지만, 나는 10년 이상된 영화를 볼 때 ‘빈티지’의 면모를 깨닫고는 한다.


 <조블랙의 사랑> 역시 내가 사랑하게 된 빈티지 영화 중의 하나이다.단순히 젊은 시절의 브래드피트가 썸네일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선택했지만, 때론 의미없는 순간들이 엄청난 삶의 의미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65세의 생일을 앞두고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남아있는 삶을 즐기기에 그는 죽음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음에도, 죽음이라는 존재는 공평하게도 어떤 인간에게도 두려운 존재였다. 죽음 앞에서 그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줬다. 겸허히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본인이 선택된 이유를 찾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하소연하며 화를 내기도한다. 하지만 죽음과 함께하는 삶은 소중한 것들을 보듬고, 가져갈 좋은 추억을 정리하는 순간을 주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는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서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는 바랄게 없다고’라고 말할 수 있던 게 아닐까.


 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있을 때, 그의 딸은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게 된다. 그들의 두려움을 내려놓는 대상이 죽음의 상징인 ‘조블랙’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 재미있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단순하지만 당연한 진리를 알게되는 그 과정이 삶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랑에 도달했을 때, 사랑이라는 존재가 부득이하게 떠나버린다해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온전한 사랑 그 자체인 것 같다.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에서 창녀의 인생을 통해 사랑을 보여준 것처럼, 결국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소유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어야함을 다시 한 번 반추했다.


 <조블랙의 사랑>은 로맨스 장르로 사랑 영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곧 인생 영화이다. ‘살면서 진실한 사랑 한 번 못해봤다면 제대로 산 것도 아니지’라는 대사처럼 인생에 많은 부분은 사랑을 포괄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표현할 때 사랑한다는 표현보다는 좋아한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남여관계나 인간관계에 주로 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왜 우리는 사랑이라는 표현에 인색할까? 영어로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때 ‘I love it’이라고 하는 것처럼, 인생에서 사랑의 범위를 좀 더 확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남발할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내 삶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더는 바랄 것 없이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 > 명대사가 너무 많아서 다 담을 수 없어 아쉽지만 이거 하나만은 꼭 남기고 싶다. 예고치 못한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말이다.


- 어느 날 아침 눈을 떠서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는 바랄 게 없어.” 65년이라,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나요?

작가의 이전글 자존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