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의 편지_8
이야기를 잘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이야기를 잘 듣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고.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건 이야기를 잘 전해주는 일인 것 같아.
사연을 전해주는 라디오,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이 비슷하게 겪는 어려움이 아마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해선 안 될 뿐더러, 단순히 너와 나 사이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 말이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
이야기를 처음 들려준 사람,
그 안에 나온 사람들,
그 이야기를 들을 사람들,
그 이야기로 혹시 모를 고통을 겪을 사람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목소리와 방식.
칼럼니스트들은 이름과 얼굴을 걸고 대중 앞에 쓰는 글인 만큼 자기 주관을 원껏 펼치곤 해.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갖춘 방송인들도 마찬가지겠지. 취재 기자들도 원하는 취지를 취재 방향이나 기획 발제에 반영해볼 기회가 있고.
편집자인 내가 하는 일은 그렇지가 않아.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오로지 2차 가공만 하는 일이야. 누군가의 목소리를, 누군가가 이야기로 구상하면, 누군가가 그걸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하나의 콘텐츠로서의 갖춰진 모습을 완성하는 게 내 역할이야.
편집자들이 없다면 사람들의 목소리와 각종 사건들은 드러나지 않은 채 뒤죽박죽 세상을 떠돌 거야. 기자들이 쓴 기사도 일관성이 없어 폭발력이 떨어질 거고. 말하자면 취재기자들이 쓴 기사를 잘 포장해 세상 사람들 앞에 내놓는 마지막 공정을 맡는 거지.
때로는 회의감이 들어. 요즘은 어딜 돌아봐도 창작자의 시대인데, 내가 하는 일은 뭔가 부가가치를 만들기는 하는 걸까? 자기 얼굴과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세상에서, 스피커도 리스너도 스토리텔러도 아닌 나는 무엇일까?
수십 년 전엔 달랐지만, 지금은 사실 내게 별 자유가 없어. 내가 맡은 지면에 어떤 기사를 넣을지 정해지는 대로 받고, 순서도 정해져 있어. 그나마 뭘 해볼 수 있는 건 제목과 사진인데, 이거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걸려있는 부분이지. 글쓴이의 취지를 제대로 포착해야 하고, 읽는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쉬워야 하고, 대립되는 당사자들의 입장은 공평하게 담아야 하고, 혹시나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차별적 표현을 극도로 조심해야 하고. 요새는 '모바일 독자들을 잡기 위해선 주요 키워드가 잘리지 않게 제목 앞부분에 달아라'라는 제약도 더해졌어.
그래도, 그렇게 하나의 사건이 하나의 콘텐츠로 완성되도록 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껴보려고 하는 중이야. 어떤 이야기를 어떤 사진과 함께 앞세울지 취사선택하고, 최선의 편집을 여러 제약 안에서 구현하고, 문제는 없을지 검토하고 또 검토하는 과정. 별로 극적이거나 역동적이지 않고, 때로는 지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과정 말이야.
이런 노력들이 모두에게 무사히 가 닿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재미난 포인트가 많은데 내가 그걸 살려내지 못한 경우도 많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죄다 담으려니 밋밋한 짬뽕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때론 독자들이 마음에 영 들지 않는지, 바이라인도 없는 편집자까지 '기레기'라고 욕하는 경우도 있어.
그래도,
나는 매일 '그래도'를 되뇌며 살아. 그래도 의미 있는 노력이었어, 그래도 더 완성도가 높아졌으니까, 그래도 집단지성 덕분에 더 나은 기사가 됐을 거야, 아주 많은 발전을 이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보답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면 안 되는 걸 알아. 하지만 그런 바람을 계속 마음에 품고 일하게 돼. 눈에 띄지 않는 일이지만, 그래도 내 일이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길, 피해와 갈등을 줄였길,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해준 것이길. '이야기 전달자'로서의 나,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하겠지만 모두의 노력을 '덜 헛되게' 만들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