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피디의 편지_9
기자를 그만둘 때 한 선배가 후회할 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기자는 자기 이름을 걸고 전면에 나서는 사람이고, 이젠 그게 중요한 시대라고. 라디오는 한물갔다고.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편집기자가 매일 되뇐다는 접속사, '그.래.도' 어느새 기자를 했던 시간보다 라디오피디를 하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시점에 이르렀어.
MBTI가 근본적인 걸 고민하길 좋아하는 INFP라서 그런가(?), 직장인으로서 존재와 존재감을 10년 동안 고민하고 있네. 애초 라디오피디로 전직한 것도, 이렇게 편집기자인 너와 일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게 된 것도 거기서 시작된 일이었지.
"기사 쓰는 일이 무서워졌고, 나 자신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사표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와 동료들은 “뭐 그런 일로 그러느냐”라고 말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술 마시고, 일하고,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서 차츰 그 일을 잊어 갔다.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어크로스), 190쪽)
권석천 전 중앙일보 기자의 글과 비슷한 기분이었어. 좋은 기사란 뭘까? 좋은 기자란 뭘까? 나는 어떤 기자인가? 흔히들 기자 하면 기대하는 이상적인 이미지, 진실과 정의를 좇는 직장인 이상의 존재...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능력이 있을까? 매일 의심했어. 관성적으로 하면 얼마든지 했겠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잘못하고 있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어.
깜깜한 밤 밝혀주는 등대 같던 라디오의 목소리를 따라 피디가 되었고 비슷한 고민은 이어졌지. 특히나 유튜브로 영상 매체의 영향력이 훨씬 강력해지면서 장기판의 끝에 다다른 듯한 위기감을 느끼며 더 생각했어. 라디오란 무엇인지, 라디오피디는 이 시점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더불어 1인 미디어의 시대에 크레디트도 없는 라디오피디가 존재감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긴 시간 크리에이터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편집기자인 너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아마 이걸 우린 일찌감치 알았기에 조금 덜 외롭고 싶어서 이 편지들을 주고받기 시작했을지 몰라. 이런 고민이 우리에게 국한된 건 아닐 거야. 어제 같이 만난 친구도 그랬잖아. 정년까지 회사원 1인이라는 익명으로 남아 일하게 될 미래가 보여서 스트레스라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녀 좋아 보이기만 했었는데 그 친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
기자였을 때 이런 답 안 나오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어서 자책하고 있었거든. 그때 동료 기자가 한마디 해줬어. 고민을 하다 보면 더 나은 기자가 되어 있을 거라고, 고민하지 않는 기자가 더 많다고. 비슷한 이야기를 라디오 피디 하면서도 들었어. 여전히 답은 모르겠고 이런 생각들이 공상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거든? 언제가 돌아보면 이 생각마저 유효했다고 평가하게 될까?
새삼 첫 편지로 돌아가 보니 1년 전이네. 1년 사이 편집기자인 너와 라디오피디인 나는 얼마나 또 달라졌나 싶다. 그 사이 우리를 거쳐간 독자와 청취자는 또 어땠나 싶고. 명확한 답은 손에 쥐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일 또 출근해서 라디오 스튜디오 콘솔 앞에 앉아 있겠지. 나 역시 너처럼, 또 다른 월요일을 맞이하는 직장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