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5

by 방랑자

정신이 들었다. 명상 홀은 여전히 조용했다. 생각에 깊이 빠져 명상을 잊었다. 생각은 생각을 낳았고 또 생각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다리가 저린 줄도 몰랐다. 정신이 들고 저린 다리를 주무렀다. 종이 울렸다. 오늘은 질문해야겠다. 힘들었고 궁금했고 물어보고 싶었다. 이게 정상인지 아니면 나만 그런 건지. 사람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 비교의 의미는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나만 이상한가' 풀고 싶었다. 하루에 한 번 10분간 인터뷰가 허락됐다. 인터뷰 목록에 이름을 남겼다. 무진 말고도 인터뷰 대기자에는 5명이 더 있었다. 꾸준히 정진하는 모습을 봐았던 터라 그들은 무슨 질문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깊은 내면을 알아가고 싶어 찾은 명상 센터였다. 한국도 아닌 네팔에 와서 명상수업을 들었지만 쉽진 않았다. 깊은 내면은커녕 잠과 싸우기 일쑤였고 창살 없던 감옥처럼 느껴진 이곳이 더 두려워졌다. 못하겠다고 말하고 나가버릴까 싶지만 그러기에도 내키지 않았다. 며칠 더 참으면 침묵도 해제되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데 그럼에도 하루하루가 더디게만 가고 있었다.


가르침에 열심히 따라 했지만 명상이란 눈만 감으면 되는 게 아니었다. 온몸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노력했다. 새로운 가르침이 있기 전엔 잠과의 싸움이었다면, 새로운 가르침이 있고 난 후엔 생각에 사로 잡혀 이곳에 왜 왔을까 덧없는 시간만 보내는 게 아닐까 불안했고 우울했다. 무진은 물어보고 싶었다. 마음은 떠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센터에 오기 전보단 가슴은 가라앉았다. 모든 활자를 제한했고 글쓰기, 책 읽기, 침묵하기, 사람과의 접촉뿐 아니라 눈빛조차 교환하지 않을 만큼 독하게 규칙을 지켰다. 물어보고 싶었다.


단체 명상 시간은 끝이 났고 10분간 휴식시간을 가졌다. 밖을 거닐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깊은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고 주위에 들리는 모든 소리에 집중했다. 새들 소리가 들렸다. 숲에서 들리는 새들 소리는 숲을 지나 말을 걸었다. 대답을 바라지 않는 소리였다. 꽃이 보여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냄새도 맡고 지나가는 개미들의 움직임도 지켜봤다. 신발에 밟히면 하루살이 인생도 될 개미들의 바쁜 움직임은 신기하기도 했다. -네가 알기나 해.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는 하루살이 인생인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획적인 움직임만 보였다. 종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몸이 힘들지 않으면 잠이 올 거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기침소리는 메아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시작한 기침소리에 더 적막해지기 전에 하고 싶은 마음들이 생겼는지 하나 둘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홀로 적막을 깨기 싫었던 모양이다. 무진도 보태어 목안이 간지러움을 느껴 기침 두 번 했다. 두 시간을 앉아 명상을 시작하기 전 무진은 생각했다. 이번에도 생각에 사로잡히면 내버려 두기로 했다. 생각이 다시 명상으로 간다면 그것 또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마음을 다그친다고 생각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호흡을 일정하게 했다. 호흡이 가빠지면 호흡에 집중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호흡이 아주 얕아질 때면 호흡을 알아차리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집중하자 생각할 수 없었다.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고 등에서는 간지러움이 올라와 몸이 베베 꼬였다. 간지러움은 목 뒤로 올라오더니 얼굴로 오기 시작했고 다시 이마로 머리 위로 올라갔다. 참기 힘들어 머리를 긁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이윽고 배로 오더니 다리로 뻗어나갔다. 반응하지 말고 지켜보기로 했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목적이 따끔거린다. '어지간히 한다.' 입으로 손을 갖다 대고 헛기침을 여러 번 했다. 기침이 효과 있었는지 간지러움은 사라졌다. 생각이 전혀 없진 않았다.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지켜보기로 했고 사라지면 명상에 집중했다. 두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지만 맛이 없진 않았다. 밥도 적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무진은 개의치 않았다. 소식해야 정신이 맑아지며 명료해진다는 말에 더 먹고 싶은 밥도 먹지 않았다. 뱃가죽이 등짝을 향해 붙어가고 있었다. '10분간 짧은 대화로 해답이 올까' 무진은 선생을 만나기 전 질문할 문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명상을 시작하고 4일간은 힘들었어요. 자리에 앉으면 잠이 왔고요. 심하게 잠이 올 때면 숙소로 가기도 했습니 다. 새로운 가르침을 받은 후엔 달라졌습니다. 명상하는 중에 명상을 잊어요. 정신은 깨어 있는데 생각에 빠집 니다. 문제는 생각이 멈추질 않는 겁니다. 이야기를 만들어요. 때로는 이야기에 빠져 종소리에 깨기도 합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 명상을 계속해야 하는지 걱정돼요.


-자연스러운 겁니다. 나도 때로는 명상하며 잠을 자기고 하고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어요. 지켜봐요. 자신을. 반응하지 말아요. 있는 그대로 지켜봐요. 생각하지 말자 해도 생각은 계속 생각을 낳습니다.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 대요. 반응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게 생각이에요. 다만, 몸의 감각을 느껴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느껴봐 요. 그러면 됩니다. 물론 힘들죠. 나도 힘든걸요. 한 번에 되는 건 없어요. 짧은 수련으로 모든 게 완벽해지지 않는답니다. 오랜 시간 수행이 필요한 거예요. 조급해하지 말아요. 누구다 다 같아요. 앉아있는 것도 힘들죠. 쉬운 건 없어요. 세상이 다 그래요. 기적은 없어요. 여기서 큰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지 마세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그랬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선생도 사람이었다. 같은 사람이었다.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도 하는 같은 사람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무진은 좀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실 어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지속되는 불안과 걱정에 인터뷰 목록에 이름을 남겼지만 하루 더 지켜보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때 하려고 했다. 인터뷰를 통해 무진은 작은 실마리를 찾았다.




비행기에 탔었나. 그랬지. 비행기에 탔지. 네팔 사람들, 외국인들, 단체 산악회에서 오신 어르신들이 있었다. 그 외도 여럿 있었지. 비가 내리고 있었지. 기주는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있었다. 흰색 신발을 신고 있었다. 팔목엔 팔찌도 보였다. 외투는 벗지 않았다. 담요를 꺼내 무릎 위에 살포시 포개어 놓았다. 창밖을 계속 응시했다. 비 내리는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까. 비행기가 이륙하고서도 한 동안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생각이 많았을까. 무진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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