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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Sep 08. 2017

#103

연재소설

-뭔 소리야. 비 오는 거야?

-응, 대박 우박 떨어져.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엄청 뜨겁더니, 천장 구멍 나는 거 아니야. 이것 봐.

기주가 손바닥에 놓인 우박을 내밀었다. 우박은 냉동실에 얼려놓은 얼음보다 컸다. 천장을 뚫을 기세가 맞았다.

우박은 눈꽃송이처럼 보였다. 소리는 요란했지만

-뭔 일이래?. 무슨 날씨가 이래. 대박이다. 진짜. 이렇게 큰 우박은 처음 본다.

-나도. 내일 트레이닝받아야 되는데, 비 오진 않겠지?

-내일 날씨는 화창 한대. 검색해 보니까.

-3월이 다가와서 그런가, 왜 한국도 3월 날씨가 변덕스럽잖아. 산에서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그렇지. 3월이 변덕스럽지. 아, 근데, 엄청 놀랐네. 지금 몇 시야?

-6시. 배고파?

-어. 일어나면 배고프네.

-나도 배고파서 일어났어. 저녁 뭐 먹지?

-우리 탕수육 먹은데, 사장님이 하시는 곳. 삼겹살도 있지 않았어?

-맞다. 삼겹살 있어. 삼겹살 먹을까? 우리 치킨은 먹었어도 돼지고기는 많이 못 먹었잖아. 삼겹살 먹자.

-소주는 비싸겠지?

-맥주 먹어. 내일 트레이닝해야 되니까.


소낙비는 멈췄다. 소낙비를 내린 구름은 모두 사라졌다. 하늘엔 붉은빛만 남아 있었다.

작은 철문은 지났다. 좌측으로 한번, 우측으로 한번 돌아가야 했다. 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문을 만들었다.

식사하기에 조금 이른 시간이었을까 식당 안은 한적했다.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두 번째 방문에 직원이 무진과 기주를 알아봤다. 항상 계산대에 있는 직원 이름은 옴.

-옴, 삼겹살 줘요. 그리고 맥주도 같이요.

-네.

-삼겹살은 얼마 만에 먹는 거지, 한 6개월 됐나? 못 먹은 지 한참 됐는데.

-나 오기 전에 먹었어.

기주는 퇴사하고 직원들과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고 했다. 소주와 삼겹살.

-그때 먹었다고 했지. 난 반년도 넘은 것 같은데.

-지금 실컷 먹어둬. 언제 또 먹을지 모르니까.

-그나저나. 카약이 물에서 하는 거라 체력 소모가 심할 텐데. 잔잔한 호수에서야 그렇다 쳐도 강에서 하면 장난 아니겠는데.

 유튜브 보니까 어마어마하더라. 레벨 5에서 했다간 하늘나라로 가겠어.

-선수들이나 해야지, 우리 같은 초보가 했다간 큰일 나.

-아무튼 재미있겠어.


테이블엔 가스버너와 불판이 올려졌고 반찬과, 고기가 준비됐다. 불을 붙이고 예열을 했고, 작은 비계로 불판을 쓱싹 문질렀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나자 고기를 몇 점 올렸다. 익숙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기름지고 쫄깃한 식감이 떠올랐다. 사실 고기의 맛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금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지 않으면 그냥 고기 맛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자주 먹는 이유는 어쩌면 채식주의자가 아니어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고기가 먹고 싶을 뿐인 게다. 그게 전부인 것처럼.

무진이 어렸을 때, 10대 초반에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시골로 놀러 가면 아버지는 생고기를 사 왔다. 드럼통 반을 잘라 그 안에 참숯을 넣어

불을 지폈고 격자무늬 불판을 올렸다. 숯에 구워 먹는 고기는 항상 목살이었다.

그 부위가 가장 맛있다고 했다. 삼겹살엔 비계가 많아 숯불에 구우면 기름이 많이 떨어져 불길이 산처럼 솟아오르기 때문이라는 걸 무진은 뒤늦게

깨달았다. 기주와 무진이 연애를 하던 중에는  가끔씩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러 시골집에 놀러 갔다. 그곳에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목살과, 참숯을 사와 뒷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고기를 먹고 나면 마당에 돗자리를 폈다. 양손을 깍지 끼고 뒤통수를 받치고, 종아리 아래에 베개를 올려놓으면 세상 편한 자세가 되었고, 하늘에 그림 그려진 별들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가장 아름다운 밤을 맞이 할 수 있었다.

기주는 종종 시골 이야기를 했다. 그곳에서 본 별들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트레킹 하며 새벽마다 별을 보는 일은 기주에게 다시 찾고 싶은 기억이 아닐까 생각했다.

북극성을 보며 동서남북을 알았고 가장 밝게 빛나던 북극성을 따라 북두칠성과 큰곰자리를 찾았다.

별자리를 찾으며 보낸 밤은 언제나 짧았다. 무진과 기주가 생각하는 시골의 밤은 여름에도 추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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