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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Oct 19. 2017

#115

연재소설

결국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정된 일이었다.

일상이 오지 않을 것 같던 일상이 찾아오는 중이다. 순간을 살 것이다. 순간이 삶이며 삶이 순간이다. 바쁘지도 않은 삶이 바빠졌다.

균형이 깨질까 봐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던 현실에서 좀 더 꿈을 위해 왼쪽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무진은 곰곰이 생각했다. 열흘간의 명상이 끝났고 세상으로 나왔다.

잠시 멈춘 여행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한국에 돌아왔을 땐,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몸과 마음은 이미 적응하고 있었다.

원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말이다.

정확히 12일 만에 세상이다. 긴 침묵 깊은 명상이 있었다. 현실을 숨기러 가지 않았고, 딛고 얼어서야 할 책임과 고통을 알아가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출가의 삶을 경험했다. 간혹 꿈꿨던 적이 있다. 스님이 되고 싶다고.

이것이 출가의 삶이라 생각하니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미숙한 생각이었다.

세상으로 나온 지 몇 시간이 흘렀지만 어색함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

10일간 명상수업에선 허용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무엇보다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제한된 물품이 아닌, 생각 그 자체였다. 선생님과 면담시간, 저녁 수업시간을 통해 일부 해소되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생각에 지배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점차 강해졌다. 명상이 끝나는 새벽까지도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생각하고 있구나, 지켜보자 어디까지 가는지.’ 며칠이고 다짐하면서도 되지 않았다.

답답함과 고통이 해결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그토록 답답했는지 미약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상은 생각을 지배하기보다, 알아차림이 더 중요했다. 생각하면 생각한 대로 지켜보고 내가 생각하고 있구나 알아차리면 된다.

깊이 빠져들지 않게 지켜봐야 했다. 호흡에 집중하고 감각에 집중하는 건 그다음 문제였다.

동이 트려면 두 시간이 필요한  시간에 명상이 시작되어 저녁 뉴스가 끝날 때쯤 하루 수업이 끝났다.

끊임없이 강조했던 근면하고 성실히 게으르지 않고 졸음과 싸우며 행해진 명상 수업은 강한 결심을 하게도 해줬다.

기적을 바라지 않았고 집착을 버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힘이 들면 쉬었다. 명상을 하는 중에도 명상을 중단하기도 했다.

알아차림과 평정심은 중요했고 무상함이 무엇인지 열흘의 시간 동안 겨우 알 수 있었다.

다시 명상하면 감정과 생각이 또다시 힘들게 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전보다 회복시간은 명상이 계속될수록 적어지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마음은 이전보다 유연해졌다. 명상 홀에 들어가기 전과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무진은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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